與도 野도 총선 앞두고 '지역구 표심 눈치보기'

유승민, 국가재정법 개정안 발의
문재인 정부 들어 예타 면제 54조
“정부가 이렇게 쉽게 대형 공공사업에 ‘예타(예비타당성조사) 면죄부’를 주는데 국회가 제동을 걸지 않는 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달 31일 기재위 전체 회의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대규모 공공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가 남발되고 있는데도 국회가 이를 방조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무분별한 예타 면제를 ‘총선용 세금 살포’라고 비판하던 자유한국당 등 야당조차 예타 면제 기준을 강화하자는 주장엔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금 살포"라며 비판하더니…'예타'면제 기준 강화 반대하는 야당

“총선 겨냥한 매표 행위”라더니…

정부는 지난 1월 국가 균형 발전 등을 이유로 전국 23개 지역 사업(총 사업비 24조1000억원)에 대해 예타를 면제했다. 예타는 공공사업(사업비 500억원 이상)에 들어가기 앞서 경제성을 따지는 절차다. 정부의 ‘선심성 혈세 낭비’를 막기 위해 1999년 도입됐다. 다만 현행 국가재정법은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이나 국가 정책적으로 필요한 사업’은 예외적으로 예타를 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1월에 발표한 예타 면제 사업 중 상당수는 이 같은 예외 규정에 부합하지 않고 정당성도 결여됐다는 비판이 많다. 예타가 면제된 23개 사업 중 7개는 과거 예타를 한 번 이상씩 거쳤지만 경제성과 정책성, 지역 균형 발전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아 추진이 좌절된 사업이다.

남부 내륙선 철도 건설사업이 대표적이다. 경북 김천에서 경남 거제를 잇는 172㎞ 구간에 고속철도를 놓는 이 사업은 공사비가 4조6562억원으로 예상된다. 2017년 5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경제성 분석에서 평가자 6명 모두 ‘경제성 없음’이란 판정을 내렸지만, 이번에 예타가 면제됐다. 또 다른 예타 면제 사업인 국도 77호선(전남 압해~화원) 건설은 2007년과 2014년 두 차례 시행한 예타에서 모두 B/C(비용 대비 편익)가 기준치인 1에 크게 못 미쳐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이 사업에는 4265억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권은희 바른미래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예타에서 탈락했다는 건 지역 균형 발전을 감안하더라도 사업 추진이 부적절하다는 의미”라며 “이런 사업에 대규모 세금을 쓰면 과잉 투자로 예산만 낭비할 위험이 크다”고 했다. 예타 면제 사업 발표 당시에도 한국당 등 야당에선 “내년 총선을 겨냥한 매표 행위”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에 있을 때 비판했던 ‘토건 경제’로 돌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바른미래당 정책위에 따르면 현 정부 들어 약 2년간 예타가 면제된 사업 규모는 총 54조7000억원이다. 박근혜 정부 때(23조9091억원)보다 130% 가까이 급증했다.

야당도, 기재부도 법 개정안엔 모두 반대

KDI 출신인 유 의원은 무분별한 예타 면제를 막기 위해 지난 2월 국가재정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과거 예타 때 타당성이 없다고 평가된 사업은 추후 예타 면제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게 골자다. 이 법안은 지난달 27일 기재위 경제재정소위원회에 상정됐지만,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유 의원과 같은 당인 김성식 의원을 빼고는 대부분 의원이 반대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심기준 민주당 의원은 “한 번 탈락했다고 해서 예타 면제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는 건 과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소위 의원들은 물론 국가 재정을 꼼꼼히 관리해야 할 기획재정부조차 심드렁한 모습을 보였다”며 “법안이 폐기 직전까지 갔다가 어렵사리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여야 모두 개정안을 반대하는 것은 예타 면제가 자신의 지역구 표와 직결될 수 있는 사안이어서다. 예타 제도가 느슨할수록 철도, 도로 등 대규모 공공사업을 지역구에 유치할 가능성이 커지고, 지역 주민들의 표심을 잡을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 깔려 있다. 어느 지역구에 1000억원 규모 교통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유치하면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의 재선 성공률이 0.86% 높아진다는 분석 결과(KDI 조사)도 있다. 이런 이유로 소위 의원들은 의무적으로 예타를 받아야 하는 기준을 현행 사업비 500억원에서 1500억원으로 높이자는 국가재정법 일부개정안(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 발의)엔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정된 재원을 꼭 필요한 데 쓰자’는 목적에서 도입된 예타 제도를 보다 엄격하게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예타 면제 기준과 사업별 면제 사유부터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하헌형/김소현 기자 hh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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