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미·북 간 비핵화 협상에 진전이 없는 가운데 최근 북한 영변 핵시설에서 핵연료 재처리 작업이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일각에선 최근 최고인민회의에서 미국과의 ‘장기전’을 선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돌아갈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北 핵연료 재처리 의심 정황 포착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16일(현지시간) 산하 북한 전문 사이트 ‘분단을 넘어(Beyond Parallel)’에 올린 보고서에서 지난 12일 촬영된 상업위성 사진을 근거로 영변 핵시설에서 재처리 작업이 의심된다고 밝혔다. 폐핵연료봉을 재처리하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

보고서는 영변 핵시설의 우라늄 농축 시설과 방사 화학 연구소 근처에서 발견된 특수 궤도차 5대에 대해 “과거 방사성 물질 운반이나 재처리 작업과 관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재처리 작업 전후에 운반 활동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미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제니 타운 연구원은 로이터통신에 “만약 재처리가 진행 중이라면 지난해 미·북 회담과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의 미래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을 고려할 때 이는 중대한 전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5일 “북한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는 작년 말부터 가동이 중단된 상태이며 현재 재처리 시설 가동 징후는 없다”고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했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CSIS와 38노스는 민간 싱크탱크로 상업위성 사진을 판독하지만 국정원은 미국과 군사위성 정보를 공유해 정확성이 훨씬 높다”며 “일단은 국정원의 판단을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美 대북대표, 북·러 정상회담 앞두고 모스크바로

김정은은 16일 최고인민회의 이후 첫 시찰지로 평양을 방어하는 공군부대인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1017군부대를 찾았다. 김정은의 군 시설 방문은 지난해 11월 16일 보도된 신형 첨단전술무기 시험 지도 이후 5개월 만이며, 올해 들어선 처음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제재국면 속에서 가장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비행훈련을 지도해 제재에 영향이 없고 앞으로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미 국무부는 “비건 대표가 17~18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러시아 관리들과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진전을 위한 노력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뤄진 비건 대표의 방러는 북한의 또 다른 우방국인 러시아의 대북제재 이탈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러 정상회담은 이르면 다음주 중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간 경제협력은 점점 긴밀해지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 1~2월 약 1만358t의 정유제품을 북한에 수출했다. 전년 동기의 약 4.6배에 달한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