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가 악순환의 수렁에 빠진 배경에는 양국 정치인들의 도발적인 발언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지층 결집 등 국내 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서로 반일·혐한 감정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한국 대법원의 징용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일본 정치인들은 도를 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일본 여당인 자민당의 중진인 야마모토 도모히로 의원은 지난 2월 “한국은 도둑”이라며 망언을 퍼부었다. 외무상을 지낸 나카소네 히로후미 자민당 의원은 “한국은 국가로서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총무상을 지낸 신도 요시타카 자민당 의원도 “분노를 넘어 질린다”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도 한국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 발언에 연일 수위를 올려가며 논평을 내고 있다. 아소 다로 재무상은 한국에 대해 관세나 송금, 비자 발급 정지 등 보복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헌법 개정, 교과서 검정 등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추진하고 있는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지층인 보수층을 결집하는 데 반한 감정을 이용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지난 2월 미국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 또는 곧 퇴위하는 (아키히토) 일왕이 사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키히토 일왕을 “전쟁 범죄 주범의 아들”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이 발언은 일본 언론의 표적이 됐고, 불이 붙기 시작한 양국 간 감정 악화에 기름을 부었다. 일본 정계에서는 “한일의원연맹 회장까지 지낸 인간이…” “분노를 금치 못한다” “언급할 가치도 없다”는 등의 감정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