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4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4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청와대 참모진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가 여러 뒷말을 낳고 있다. 야당은 초대형 산불에도 재난대응 책임자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붙들고 있었다는 여론의 뭇매에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청와대 참모진은 답변 과정에서 인사 검증 부실과 관련해 여전히 국민과 동떨어진 인식을 드러내 빈축을 사고 있다.

산불 번지는데 안보실장 붙잡은 野, 인사참사 변명한 靑…국민은 없었다
국회 운영위가 한창이던 4일 저녁, 강원 고성 일대에서는 사상 최악의 산불이 발생했다. 동시다발적인 산불에 하루 새 화마(火魔)가 집어삼킨 산림은 여의도(250㏊) 면적을 크게 웃도는 525㏊에 달했다. ‘식목일’을 하루 앞두고 벌어진 끔찍한 재난이다.

소방청이 전국적 차원에서 여러 시·도의 소방력을 동원하는 ‘화재 대응 3단계’로 격상하며 위기감을 한층 높인 것은 4일 오후 9시44분이다. 저녁 식사를 마친 여야 의원과 청와대 참모들은 그보다 20분 앞서 회의를 속개했다. 1시간반가량 정회했으니 이미 산불의 심각성을 여야는 물론 청와대 참모들까지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오후 9시32분께 홍영표 운영위원장은 “고성 산불 문제를 얼마나 파악하고 계십니까? 실장님이나 안보실장님 말씀해 보십시오”라고 상황 보고를 요구했다. 정 안보실장은 “오늘 저녁 7시반경에 변압기에서 발화가 돼서, 지금 속초 시내까지 번지고 있다”고 설명한 뒤 “우선 1차장을 위기관리센터로 다시 보내 상황을 관리토록 했다”고 말했다. 상황을 전해들은 홍 위원장은 추가 질의가 없다면 정 실장이 청와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자고 운을 띄웠다.

그렇게 1시간가량이 흘렀다. 홍 위원장은 10시3분 “지금 저렇게 대형 사고가 생겨서, 산불이 생겨서 지금 민간인이 대피까지 하고 있는데 그 대응을 해야 할 책임자를 우리가 이석시킬 수 없다 이래서 국회에서 잡아 놓는 것이 옳은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라며 정 안보실장의 이석을 다시 한 번 요구했다. 하지만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저희도 정의용 안보실장을 빨리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순서를 조정하셨으면 됩니다”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청와대 한번 부르기 쉽습니까?”라며 한국당 의원들이 한 번씩 질문을 해야 이석이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정양석 한국당 의원 역시 “외교 참사는 더 (문제가) 크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회의에 참석한 의원들은 여야 할 것 없이 ‘의원 한 명, 한 명이 국민을 대신하는 헌법기관’이라고 했지만 정작 국가재난 사태에선 국민을 위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날 운영위에서 보여준 청와대 참모진의 인사 검증 부실에 대한 ‘변명’도 국민의 마음을 시커멓게 태웠다. 1월 임명된 이후 첫 국회 데뷔전을 치른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야당 의원들의 청와대 인사시스템에 대한 질타에 “송구하다”면서도 “청와대의 소수 인원이 공적인 정보만 활용해서 제한된 시간 안에 검증하는 것이 완벽할 수는 없었다. 검증 불가능 영역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시간이 없어 검증이 부족했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좀 더 세심히 살펴본 뒤 인사를 단행했더라도 ‘왜 이렇게 늦었냐’며 채근할 국민은 한 명도 없다. 반복되는 ‘국정원 탓’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노 실장은 인사 검증 실패 원인에 대해 “그렇다고 과거처럼 국가정보원의 존안 자료를 활용하려면 정보기관의 국내 정보 활동을 허용해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이를 절대 할 수 없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국정원의 국내 정보 파트가 사라져 정보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국정원의 긍정적인 측면을 알면서 적폐 청산을 이유로 국정원 국내 정보 활동을 전격 중단한 청와대가 할 말은 아니다.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면 이 역시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문재인 정부 참모들에게 ‘김학의 사건’을 질의하며 물타기에 급급했던 여당 의원들 역시 비겁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야당을 향해 쏟아낸 품격 없는 조롱과 비웃음, 전국에 생중계된 여당 의원들의 하품 장면 역시 ‘참사’에 가깝다. ‘국민’을 앞세웠지만 ‘국민’은 뒷전인 이런 국회 모습을 언제까지 봐야 할지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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