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 목소리마저 사라진 국회

법안 처리율 '역대 최저'
민생법안, 선거제에 밀려 '뒷전'
20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법안처리율을 보이고 있다. ‘식물국회’란 오명을 얻었던 19대 국회의 기록을 넘어설 추세다. 여야 간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면서 1년여 남은 20대 국회에서 정상적 법안 처리는 물건너 갔다는 자조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여야 '극한 대치'…민생법안 쌓였는데 20대 국회 벌써 '폐장' 분위기

역대 최저 법안 처리율

2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대 국회가 개원한 2016년 5월 30일부터 지난 26일까지 1031일 동안 발의된 법안 1만9391건 중 법안이 처리(대안 통과 포함)된 비율은 31%(6074건)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2012년 5월 30일~2015년 3월 26일) 19대 국회의 처리비율(35%)보다 4%포인트 낮은 역대 최저 수준이다.

경제 활성화 법안이 몰려있는 경제 관련 상임위원회의 성적은 더 초라한 실정이다. 19대 국회 개원 후 1031일 동안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19대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의 법안 처리비율은 49%였지만 20대 국회에선 절반 수준인 25%에 그쳤다. 같은 기간 20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19대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법안 반영 비율은 21%로 19대(43%)의 절반 이하다. 국토교통위원회와 행정안전위원회 역시 지난 19대보다 법안 반영 비율이 각각 2%포인트, 8%포인트 낮다. 경제 관련 상임위 중에선 유일하게 기획재정위원회만 37%로 11%포인트 높았다.

이로 인해 현 정부의 경제 활성화 법안도 수년째 표류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여름 규제 혁신 차원에서 주문한 △인터넷은행 도입 △빅데이터 3법 △원격의료 가운데 인터넷은행을 제외한 두 개 정책은 국회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개인 정보 이용 규제를 완화해 빅데이터산업이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빅데이터 3법(신용정보법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은 3월 임시국회에서 논의를 시작했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신용정보법을 다루는 정무위는 자유한국당이 손혜원 무소속 의원 부친의 유공자 심사 절차와 관련된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파행 중이다. 법안 심사 소위에서도 ‘쟁점 법안은 후순위에 두자’는 한국당 요구에 법안 심사조차 불투명하다. 정무위 관계자는 “현 정부의 중점 법안은 한국당에서 그냥 통과시켜줄 순 없다는 입장이라 법안 심사에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을 다루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KT 청문회’ 등 정쟁에 파묻혀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사회적 대타협도 국회선 표류

지난 27일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교통소위에선 택시기사 월급제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지만 “법인택시의 재정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는 한국당의 반대에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민주당은 지난 7일 카풀 도입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기구에서 노조, 택시회사 단체 등과 기사 월급제 도입에 합의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문 대통령이 작년 7월 주문한 원격의료법안 역시 시민단체 반발과 더 규제를 풀라는 야당의 반대에 표류하고 있다. 국회에서 8년째 발이 묶인 서비스산업발전법 역시 의료분야 포함 여부를 두고 여야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향후 전망도 밝지 않은 분위기다. 선거제와 일부 법안 통과를 연계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처리 논의가 길어지면서 각 상임위의 쟁점 법안 논의가 멈춰서 있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선명성 경쟁을 벌이며 법안에 대한 이견도 좁히지 못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민주당 한 의원은 “여당 의원 사이에선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취임 후 ‘협치’라는 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며 “특정 법안 통과를 위해 한국당에 양보하기보다 지지층 결집을 겨냥해 강 대 강 대결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여당 내에서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선 본격적인 총선 준비에 들어가는 9월 정기국회 전 상반기 국회가 핵심 법안 통과를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보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야당은 무조건 반대보다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여당 역시 한국당을 고립시키기보다는 양보를 통해 중요한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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