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휘의 한반도는 지금]최선희 '평양 회견'으로 본 '북한의 계산법'
미 언론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을 공격견(犬)으로 표현한다. 최선희는 15일 평양 기자회견에서 하노이 회담에서의 미국 태도를 “강도같다”고 비난함으로써 다시 한번 그의 별명이 유효함을 입증했다. 그는 지난해 5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political dummy)”라고 맹공을 퍼붓기도 했다. 6월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 직전에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험악한 입’으로 활약한 인물이 최선희다.

북한 외무성의 공격성엔 당연한 측면이 있다. 자칫 유화적인 제스쳐를 취했다간 군부의 역공을 당할 수 있다. 최선희가 평양 기자회견에서 “인민·군부가 핵포기 절대 안된다는 청원을 김정은 위원장한테 수천건 보냈다”고 언급한 부분에서 이 같은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김정은은 미국과의 핵협상에 나서면서 ‘천안함 폭침’의 주범이자 군부를 대표하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내세움으로써 군부의 반발을 무마시키고자 했다.

이용호 외무상과 최선희가 3월1일 하노이 심야회견을 자청하고, 불과 보름 만인 15일에 러시아 등 친북 언론기관을 불러 기자회견을 연 것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12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의미심장한 얘기를 했다. 문 특보는 “김정은 위원장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인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과제 하에 작년 4월20일 전원회의 결정을 준수하겠다고 밝혔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로) 군부에 반대를 위한 명분이 주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북한은 지난해 4월 20일에 개최된 당 중앙위원회 7기 3차 전원회의를 통해 국가의 전략노선을 경제·핵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이하 경제집중노선)으로 전환됐음을 공표한 바 있다. 핵무력이 완성됐으니 경제개발에 집중하겠다는 것으로, 김정은은 대외적으로 핵개발·실험 중단 등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문 특보의 진단은 북한도 자국 관료정치의 문제로 인해 ‘톱 다운’식 정상외교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음을 지적한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선희를 앞세운 김정은의 평양 기자회견은 ‘하노이 결렬’ 이후 북한의 내부 정치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완전한 비핵화에 관한 ‘북한의 계산법’도 이런 관점에서 분석해야한다고 지적한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용호의 하노이 심야회견 발언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북한의 군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지를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밤에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용호는 이렇게 말했다. “(영변핵시설 영구폐기는) 조(북한)·미 양국 사이의 현 신뢰 수준을 놓고 볼 때 현 단계에 우리가 내 짚을 수 있는 가장 큰 보폭의 비핵화 조치다. 우리가 비핵화 조치 취해나가는 데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안전담보 문제이지만 미국이 아직은 군사 분야 조치 취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 보고 부분적 제재 해제를 상응 조치로 제안한 것이다”

이용호의 발언에서 주목할 부분은 미국이 부담스러울 것으로 판단한다는 ‘군사 분야 조치’다. 이용호는 ‘영변핵시설 폐기→5개 분야 경제제재 해제→북한 경제발전→군사 분야 상호 조치’이 순으로 ‘북한의 계산법’을 공개한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영변핵시설 폐기를 넘어선 우라늄농축시설 등에 대한 신고와 WMD(대량살상무기) 동결은 미국이 취할 군사 분야 조치와 맞바꿔야한다는 게 북한의 입장인 셈이다. 전직 고위 외교 관료는 “군사 분야 조치란 주한미군 철수, 전략자산의 한반도 반입 금지 등 군부가 주장하는 바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북한 정치구조에서 군부는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꼽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도 군부의 핵심들은 김정일 면전에서 남한과 교류하는 ‘비둘기파’들을 비난하곤 했다. 당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김정은으로서도 군부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하노이 결렬’은 김정은의 선택지를 좁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향후 미·북 협상은 난관에 부딪힐 공산이 크다. 체제 결속을 위해 미사일 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까스로 만든 한반도 평화 무드를 원점으로 돌리지 않기 위해선 어느 때보다 우리 정부의 ‘창의적인 중재’가 필요해보인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