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도발에 가장 민감한 나라는 일본이다. 북한은 이를 의식해 핵을 탑재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일본 열도 너머로 날리곤 한다. 그럴 때면 일본 전역에 비상령이 내려지고, 시민들은 방공호로 대피하는 연습을 진행한다. 이런 이유로 일본은 북핵 문제에서 늘 주도권을 쥐고 싶어한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재팬 패싱’이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15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중단” 위협과 관련해 입을 열었다. “일본은 지속해서 북·미 프로세스를 지원해 갈 생각”이라는 것이다. 최선희가 우리 정부를 향해 “미국의 동맹인 한국은 중재자가 아니라 플레이어다”고 말한 점을 감안하면 일본이 한국의 역할을 대신하겠다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일본은 지난해 ‘4·27 판문점 선언’에 이어 6월엔 미·북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첫 만남을 갖자 위기 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한반도 비핵화에 일본의 역할은 없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기도 했다.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의례 등장하던 일본의 대북 전쟁배상금 얘기도 이번 정부에선 아예 언급조차되지 않았다. 대신, 문재인 정부는 ‘평화가 경제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한국 주도의 북한 경제개발 의지를 천명했다. 한국이 키를 쥐고 우리 기업 및 글로벌 자본의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전략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국 주도의 미·북 관계 개선에 민감해하는 이유는 납치자 문제 때문이다. ‘납치의 아베’라 불리는 아베 총리는 정치 신인 시절부터 북한이 납치한 일본인들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그가 두 번에 걸쳐 총리에 선임되고, 최장수 총리 타이틀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도 납치 문제에 대한 강한 의지 덕분이다. 스가 관방장관도 15일 브리핑에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 핵·미사일 등 모든 현안의 포괄적 해결을 위해 미국을 포함한 관계국과 긴밀히 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선희의 입을 빌린 김정은의 도발, 그로 인해 곤란해진 한국 정부의 입장을 감안하면 현재 일본의 북핵 관련 위상은 한결 높아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일본 정부는 가나스기 겐지 일본 북핵대표를 통해 납치 문제를 회담 의제로 올리는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주장하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원칙을 미국이 북핵 협상에서 고수하도록 만든 것도 일본으로선 쾌재를 부를 일이다.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우리 정부보다 우위에 서 있다. 이와 관련, 스가 장관은 “일본은 평소 북한에 관한 각종 동향에 대해 중대한 관심을 갖고 정보 수집과 분석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대북 첩보망에 있어서 우리보다 우위에 있다는 게 정론이다. 휴민트(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수집)는 물론이고, 위성을 통한 정보 수집도 탁월하다. 최근 들어 북한이 일본과의 대화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우리 정부로선 곤혹스러운 일이다. 일본 정부는 최근 유엔의 대북인권결의안에서 빠지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2008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에 비해 북한은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회의를 3주째 열지 않고 있다.

일본의 전면 등장이 북핵 문제 해결에 어떤 역할을 할 지는 두고봐야할 일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조력자가 될 지, 방해자가 될 지에 관심이 쏠린다. 한가지 분명한 건 일본은 북한이 다시 협상장에 나오는데 새로운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개헌을 주장하고 있는 아베 총리는 납치 문제 해결로 정국을 단번에 돌파하길 원한다. 그러려면 북·일 정상회담만큼 호재는 없다. 대북제재가 풀리지 않는 한 일본이라고 뾰족한 수는 없겠지만 일본이 북한을 향해 제공할 일종의 ‘약속 어음’은 경제개발을 원하는 북한에겐 당근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일본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어떻게 활용할 지는 우리 정부에 달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현재처럼 한·일 관계가 최악인 상태로 놔둬서는 기회를 활용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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