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시 영빈관 인근에 있는 가로등에 시 관계자가 미국 성조기와 북한 인공기를 나란히 걸고 있다.  /연합뉴스
베트남 하노이시 영빈관 인근에 있는 가로등에 시 관계자가 미국 성조기와 북한 인공기를 나란히 걸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과 북한이 오는 27~28일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연락관 교환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미국 CNN 방송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미국이 북한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락관 교환이나 연락사무소 설치가 이뤄지면 70년간 이어진 미·북 적대관계 종식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CNN에 따르면 2명의 고위급 외교소식통은 “미·북 관계 개선의 첫걸음은 연락관 교환이며 관련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미국 측에선 한국어 구사가 가능한 고위 외교관이 인솔하는 여러 명의 연락관을 북한에 파견해 연락사무소 설치를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행정부 관료도 WSJ에 “미국이 북한 연락사무소 개설을 고려하고 있으며 여기엔 북한의 미국 연락사무소 설치를 허용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미국과 북한이 연락관 교환이나 연락사무소 설치에 합의하면 관계 정상화 작업이 급물살을 타게 된다. 통상 연락사무소 개설 이후엔 관계 진전에 따라 정식 수교 및 대사관 설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전쟁을 치른 미국과의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며 경제 발전의 길을 걸은 베트남도 연락사무소 설치라는 중간 단계를 거쳤다. 미국은 베트남전이 끝난 뒤 강력한 경제제재를 지속하다 1980년대 들어 미군 실종자에 대한 회담을 시작하면서 베트남과 관계 개선을 모색했다. 이후 부분적인 제재 완화가 단행됐고 1995년 1월 미국과 베트남 사이에 연락사무소 개설 협정이 체결됐다. 그해 2월에 베트남 경제제재가 해제됐고 7월에는 국교 정상화가 이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함께 ‘새로운 미·북 관계 수립’에 합의했다. 그런 만큼 연락관 교환이나 연락사무소 설치는 새로운 미·북 관계 수립을 위한 실질적인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미국은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한 상응 조치로 관계 개선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 WSJ는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줄이지 않으면서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일한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북한에 (핵)사찰단을 들여보낸다면 그들의 활동 기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연락사무소 설치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연락사무소 설치 등을 수용할지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북한이 제재 완화를 최우선적으로 원한다는 점에서다.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은 종전선언이나 연락사무소 설치를 (미국의 상응 조치에 따라 폐기하겠다고 밝힌) 영변 핵 폐기와 맞바꿀 ‘등가’의 상응 조치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락사무소는 1994년 북핵 위기 해법으로 나온 미·북 제네바 합의에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유야무야됐다. 그해 말 미군 헬기 격추로 긴장이 조성된 데다 북한 정보당국도 미국이 ‘외교 행낭’을 이용해 검열 절차를 거치지 않은 물품을 반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연락사무소 개설에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비핵화가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연락사무소 설치 논의가 이뤄지는 것이 지나치게 빠르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와 관련한 실질적인 성과 없이 북한이 원하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 및 경제제재 완화 조치만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