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두 번째 만남을 확정지었다. 공란이던 회담 장소에 베트남 하노이를 넣었다. 미국의 양보 덕분이다. 전문가들은 미·북 사이에 ‘신뢰’가 형성됐음을 뜻한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북한은 (핵로켓이 아닌) 경제로켓이 될 것”이라고 했다. 1950년 이후 69년간 지속된 미·북 적대관계 청산이 ‘하노이 선언’에 포함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8개월 만에 다시 만나는 미·북 정상

2차 미·북 정상회담의 개최지로 하노이가 처음 언급된 지난 8일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글.
2차 미·북 정상회담의 개최지로 하노이가 처음 언급된 지난 8일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글.
미·북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선언’ 이후 약 8개월을 ‘강 대 강’으로 대치했다. 미국은 ‘핵 선(先)폐기’를 요구했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없이는 제재완화는 물론이고 체제보장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북한도 ‘행동 대 행동’ 원칙을 강조하며 맞섰다.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장을 폭파했으니 미국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장 폐쇄를 검증 없는 ‘셀프 폭파’로 간주해 비핵화 조치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같은 미·북 간의 대치에 돌파구를 낸 것은 작년 ‘9·19 남북 평양선언’이었다. 북한은 풍계리에 대한 국제사찰과 함께 영변 핵시설 폐기 및 검증을 ‘추가 행동’으로 제시했다. 그해 11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뉴욕 회담이 무산되면서 핵협상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올 1월 ‘김영철 방미’가 성사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김정은은 김영철을 통해 전달한 친서에서 파격적인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핵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힌 것은 물론 ICBM을 포함한 모든 미사일의 폐기라는 ‘깜짝 카드’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 이어 8개월 만인 이달 말 베트남에서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공식 발표한 게 이즈음이다.

美, 북의 동시적·병행적 요구 수용

전문가들은 ‘김영철 방미→스톡홀름 미·북 실무협상→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의 2박3일 평양협상’ 등 최근 한 달간의 접촉을 통해 미·북이 대화의 방식을 바꿨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 외교 소식통은 “지난 1년간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과 접근 방식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상주의에서 현실주의로 접근법이 바뀌었다는 얘기다.

북한과 미국이 사용하는 언어도 비슷해졌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이 ‘동시적·병행적’이란 말을 사용하는데 이는 북한의 ‘동시 행동’ 원칙과 거의 같은 의미”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선(先)신뢰회복, 후(後)비핵화’ 메커니즘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8일 트윗을 통해 “나는 김 위원장을 (어떤 인물인지) 알게 됐고, 그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충분히 이해한다”며 ‘무한 신뢰’를 보냈다.

‘하노이 회담’의 결과물 중 하나로 ‘미·북 관계 정상화’ 카드가 등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상 간 신뢰가 쌓인 만큼 평양 내 미국 연락사무소 개설을 비롯해 양국 간 적대관계를 청산한다는 선언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10일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보상으로 제재완화가 아닌 체제보장을 제안하는 쪽으로 협상 방침을 바꿨다”고 보도했다.

핵신고 언제 할지 ‘주목’

아직은 2차 회담의 성공을 낙관하긴 이르다는 분석도 있다. 고 교수는 “지난해 판문점(4월 27일)에서 남북 정상이 밑그림을 그렸고, 싱가포르(6월 12일)에서 미·북 정상이 핵심 의제를 의미하는 4개의 기둥을 세웠다면, 이제 하노이에선 지붕을 얹고 기초공사를 다지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모든 핵과 미사일을 없애기 위한 중·장기 로드맵(일정표)을 도출할 수 있느냐가 이번 회담의 핵심이라는 얘기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도 전날 일본 게이오대 심포지엄에서 ‘하노이 정상회담’과 관련해 “빅딜, 스몰딜의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어떤 행태로든 로드맵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고받을 게 무엇이고 언제까지 어떻게 한다는 시간표가 작성된 상태에서 (미·북 관계가) 나아가야 예측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비핵화 로드맵을 만들기 위해선 대략적이나마 북한 핵시설에 대한 신고가 전제돼야 한다. 비건 대표는 9일 우리 측에 방북 협상 결과를 설명하면서 “논의는 생산적이었다”면서도 “아직 난제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정부 외교 소식통은 “로드맵 도출은 우리도 굉장히 바라는 것이고 미국은 물론 중국도 어느 정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핵신고는 이번 회담에서 당장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특보 역시 “미국 정보당국의 기본 추산에 따르면 북한이 핵탄두를 60~65개 갖고 있다는데, 만약 북한이 이보다 적은 숫자를 신고하면 미국은 속임수를 쓴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그렇게 되면 협상의 판이 완전히 깨질 것이기 때문에 우선 북·미가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