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군수·구청장들과 악수 >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 시장·군수·구청장들과 악수 >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은 ‘혈세 낭비’ 논란에도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를 손질해 지역 산업이 더욱 손쉽게 예타를 면제받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정책’이란 야권의 비판에도 이처럼 ‘정면돌파’를 택하면서 ‘예타 논란’은 정치권에서 더욱 가열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 지역 활력에 올인

문 대통령은 8일 전국 시·군·구 기초단체장 215명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예타 제도는 유지돼야 하지만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예타 제도 개선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을 지방자치단체장과 공유하려고 마련한 자리에서 지역에 꼭 필요한 사업에 대해서는 ‘예타 면제’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단호히 밝혔다는 평가다.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를 알고 있지만 지방 경제 활성화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이날 청와대에 모인 기초단체장은 고용위기지역 연장, 인구소멸 극복 방안 마련, 사회복지예산 국고보조율 개선 등 지역 현안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강임준 전북 군산시장은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지역 경제 및 고용 상태가 개선되지 않아 고용위기지역 지정 기간 연장이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김영만 경북 군위군수는 “언제 군이 없어질지 모른다”며 지방소멸 위험을 언급한 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에 대응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방법이 대구공항 이전”이라며 중앙정부의 지원을 주문하기도 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자체의 건의가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독려하겠다고 답했다.

예타 대상·가점 완화할 듯

문 대통령이 ‘제도 손질’ 의지를 밝히면서 후속 조치가 발빠르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면제 대상을 넓히기보단 예타 과정에서 국토균형발전 측면을 고려해 가점을 주거나 관련 배점 비율을 높이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23개 예타 면제 사업이 현행 제도로는 사업 타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예타 평가는 경제성(35~50%), 정책성(25~40%), 지역균형발전 분석(25~35%)으로 나뉘어 있다. 이 가운데 경제성 분석 비중이 높다 보니 지방과 낙후 지역에선 기준을 채우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제기돼왔다.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가재정 지원 규모 300억원 이상인 신규사업’이라는 예타 대상 요건도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 1999년 관련 제도가 마련된 이후 한국 경제 규모가 커진 것을 반영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 때문에 역대 정부를 거치며 사업성이 부족해도 예타를 면제할 예외 조항을 ‘국가재정법’에 지속적으로 추가해왔다. 길게는 1년 넘게 소요되는 예타 기간을 줄이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를 위해 현재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수행하는 예타를 다른 기관에서 함께 맡는 형태다.

정치권 ‘내로남불’ 공방 불가피

문 대통령의 완강한 입장 표명에도 ‘예타 면제 불가피론’과 ‘혈세 낭비 주장’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대전지역 경제인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시급한 지역 인프라사업에서는 예타를 면제하는 트랙을 시행 중”이라며 “원활한 균형발전이 이뤄지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정부는 지자체와 협력해 지역 전략사업을 발굴하고 적극 지원하겠다”며 “지역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켜 국가균형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여권 일각에선 섣불리 예타 제도를 손질하는 것은 부작용을 낳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민주당 의원은 “그동안 예타가 막아준 터무니없는 사업이 많았다”며 예타의 긍정적인 측면을 놓쳐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도 최근 한 인터뷰에서 예타 면제와 관련, “정부의 경제정책이 과거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집중적으로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자유한국당은 “총선용 선심성 정책”이라며 예타 면제와 관련해 공세 수위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과거 예타 면제를 주장한 보수진영과 지난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사업을 ‘토건 국가’로 폄훼한 민주당 간 ‘내로남불’ 공방이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