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개점휴업 상태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규제법안은 계속 발의되고 있다. 국회의원의 실적주의와 맞물린 ‘묻지마 법안 발의’가 이어지면서 규제 완화가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 개점휴업 와중에…의원들 '실적쌓기 규제법안' 발의 폭주
최근 2개월간 규제법안만 162건

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2일 16건의 법안이 처음 제출된 데 이어 6일 현재까지 388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이 중 정부가 규제법안으로 분류한 의원 입법은 88건(22.6%)이다. 법제처는 행정규제기본법에 비춰 의원ㄹ 발의 법안에 규제가 포함돼 있는지 검토해 유권자에게 알리고 있다.

최근 2개월간 발의된 규제법안은 162건이다. 매달 평균 약 80건의 규제법안이 생기는 셈이다.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이 중 정당별로는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81건으로 절반을 차지했다. 야당도 만만치 않게 쏟아냈다. 자유한국당이 52건, 바른미래당 22건 순이었다. 경제계 관계자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의 산업 이해도가 낮다는 게 문제”라며 “국회는 ‘선(先)규제 후(後)보완’을 얘기하지만 보완 입법이 쉽지 않아 고스란히 규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원 입법은 정부 입법과 다르게 규제 심사 대상이 아니어서 여야를 막론하고 일단 법안이 발의되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병욱, 이학영 민주당 의원은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대기업 총수 일가가 20% 이상 지분을 보유한 회사로 확대 적용하는 내용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개정안’과 대기업이 매출액이 적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인수해도 기업 결합 신고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앞서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가 이 같은 내용의 권고안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했다. 경제계 관계자는 “미래 먹거리 탐색보다 지배구조 안정화가 주요 과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생활 밀착형 규제 법안도 제출됐다. 지난달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이 발의한 ‘핼러윈데이 혐오 조형물 전시 규제법’은 청소년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명백히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조형물 전시를 법적으로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같은 당 김수민 의원이 낸 ‘초·중·고 근처 담배 진열 금지법’은 청소년이 화려하게 장식된 담배 광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담배에 대한 호기심이 증가하고 흡연 가능성을 높인다는 게 발의 취지다.

국회 관계자는 “굳이 법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담배진열 금지법은 편의점 등 소매점주의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규제 관련 법안 상당수가 기업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 없이 입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대 국회 들어 규제 강화 법안은 전부 624건이 통과됐다. 1주일에 4.5개꼴로 규제 법안이 처리된 셈이다.

‘묻지마 법안 발의’도 여전

20대 국회 들어 의원들의 법안 발의 건수도 1만6000건을 넘어섰다. 하루 평균 17.4건꼴이다. 4년 동안 1만5444건이 발의된 19대 국회와 비교하면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한 의원은 지난달 하루에만 21개 법안을 발의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 법안은 1961년 만들어진 국가재건최고회의 법령 등 사문화된 법안을 폐지하는 것으로 21개 법안이 형식상 차이점이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법안을 발의한 의원실은 “국가재건최고회의가 1961년 5월 20일 제정한 령(令)과 포고(布告)는 56년간 사문화된 채로 방치되고 있어 이를 정비하는 취지”라며 “국회 법제실과 법제처, 헌법 전공 교수 10명과 3개월에 걸쳐 논의하여 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국회의원들이 연초부터 법안 발의에 목을 매는 이유는 법안 발의가 의정평가 점수에 반영됨과 동시에 각종 시민단체의 의정평가에도 활용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현역의원 직무수행 중간평가에 의정활동 400점(1000점 만점), 기여활동 250점 등을 적용하기로 했다. 의정활동 세부 항목인 입법수행 실적에는 △대표 발의 법안 건수 △입법 완료 건수 △당론 법안 채택 건수 등이 반영된다.

민주당 관계자는 “단순히 자구를 수정하거나 베끼기 법안은 점수에 반영하지 않는다”며 “정량평가가 아니라 정성평가로 평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법안 발의 건수로 의정활동을 평가하는 관행이 없어져야 보도용, 과시용 법안 발의가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