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두 국방장관이 취임(지난해 9월 21일) 후 최대 위기에 처했다. 예비역 장성들이 사퇴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9·19 남북군사합의’로 안보역량을 퇴보시킨 데 대한 책임을 지라는 주장이다. 남북군사합의를 조속히 마무리 지으라는 청와대의 주문과 ‘반(反)국방부’로 돌아선 ‘선배’들의 틈에 끼여 있는 정 장관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 장관은 취임과 함께 예비역 장성들과의 접촉을 늘렸다. 장관직을 수행하기 직전에 체결된 남북군사합의와 정부의 안보정책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때마다 그는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는 조언을 듣곤 했다. 송영무 전 국방장관과 함께 참석한 자리에선 송 전 장관이 공개적으로 꾸지람을 듣자, 정 장관이 나서 해명하는 일도 있었다.

양대 예비역 장성 모임인 재향군인회와 성우회 행사엔 거의 빠짐 없이 참석했다. 작년 11월 재향군인회 행사엔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의 실무자인 조용근 국방부 대북정책과장(육군 대령)을 보내 설명하도록 했다. 지난달 열린 성우회 정기총회에는 당시 국방정책실장과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수석대표인 김도균 국방부 대북정책관(육군 소장) 등을 대동하고 참석했다. 이때만 해도 정 장관은 “선배님들이 제 얘기를 잘 이해해주셨다”고 했다.

지난 30일 새로운 예비역 장성 단체가 출범하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김동신, 권영해,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 등을 공동대표로 선출한 ‘대한민국 수호 예비역장성단’은 출범식에서 “한국의 안보역량만 일방적으로 무력화, 불능화시킨 9·19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는 대한민국을 붕괴로 몰고 가는 이적 합의서”라며 “조속한 폐기가 정답”이라고 주장했다.

이뿐만 아니라 정 장관을 직접 겨냥한 성명서도 발표했다. 군사분야 합의의 성실한 이행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서두르라고 지시하고 정치인들에게 아부하는 장관은 즉시 사퇴하라는 내용이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국방부는 진화에 나섰다. 박한기 합참의장은 31일 성우회와 재향군인회를 차례로 방문했다. 유삼남 성우회장은 “국민과 소통을 많이 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진호 재향군인회장은 “남북 군사합의는 궁극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북한 도발 때 군은 즉각 응전할 수 있는 대비 태세 유지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