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노영민 비서실장 등 새 비서관 임명 후 첫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했을 때다. 문 대통령은 수소경제의 성장잠재력을 거론하며 수소차 보급 확대 방안 등 정책 방향을 설명했다. 곧바로 참모진의 의견을 물었지만 선뜻 나서는 이가 없자 새로 합류한 한 비서관이 “정책의 초점을 수소차 보급보다는 수소차충전소 등 인프라 구축에 맞춰야 할 것 같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문 대통령은 경청하면서 정책 건의에 반색했지만 한동안 분위기가 썰렁해 이 비서관은 “괜한 발언을 한 것 아닐까” 속으로 후회했다고 한다.

취임 초 대통령과 참모진 간 활발한 토론 등으로 ‘활기’를 띤 청와대 분위기가 ‘엄숙’하게 바뀐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문 대통령이 모든 정책 현안을 샅샅이 꿰고 있어 담당 참모조차 이견을 제시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을 원인으로 꼽는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한 수보회의에서 사회수석실의 미세먼지 대책에 대해 “지난해와 무엇이 달라졌습니까”라며 공개적으로 질타했다. 청와대 비서진 사이에선 이 사건을 ‘보고 참사’로 부른다.

이를 계기로 수보회의 때 안건보고 횟수가 줄고 참모들도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이다.

최근 들어 수보회의에선 일부 비서관이 대통령 발언을 받아 적는 장면까지 목격되면서 박근혜 정부 당시의 ‘적자생존(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데자뷔라는 자조 섞인 지적까지 흘러나온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 첫 수보회의를 주재하면서 앞으로 ‘받아쓰기’ ‘계급장(직급)’ ‘사전 결론’이 없는 이른바 ‘3무(無)회의’ 방식의 지침을 내린 바 있다.

노 실장이 ‘군기반장’을 자처하며 근무기강 다잡기에 나서면서 청와대 참모들이 몸을 사리는 이른바 ‘업숙모드’가 더 강화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는 최근 근무용 데스크톱 컴퓨터를 통한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면서 청와대 비서진의 ‘페북 정치’ 금지령을 내렸다.

청와대 관계자는 “수석이든 비서관이든 대통령의 비서일 뿐이며 SNS에 현안 관련 사견을 담는다면 대통령의 진의가 훼손되거나 메시지 혼선 우려가 있고, 어떤 이유로든 참모 개인이 뉴스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노 실장은 지난 14일 현안점검회의에서 “사적이고 개별적인 발언들을 자제해 달라”고 주문했다.

청와대는 또 행정관급 이상 전 직원은 밤 9시 이후에는 술자리를 하지 말라는 ‘금주령’도 발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말 벌어진 의전비서관 음주운전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청와대 참모진의 기강을 확립하는 차원이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