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기업인, 하락사이클도 대비해야…기업 신바람 나게 해달라"
'갑상선암' 창원상의 회장, 신한울 3·4호기 원전 건설 재개 요청
예정보다 약 30분 연장 진행…발언 기회 못 잡은 지역기업인들 '아쉬움'

문재인 대통령 초청으로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에서는 대한민국 경제의 거의 모든 현안이 주제에 오를 정도로 열띤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올해 경기 전망이 좋지 않은데다 수출과 내수, 일자리, 투자 등이 전반적으로 부진한 상황이어서 기업인들의 '하소연'이 빗발쳤으며, 문 대통령과 장관, 참모들도 이들과 고민을 공유하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이어갔다고 한다.

특히 원자력발전소 건설,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 인상, 규제개혁 법안 처리 난항 등 최근 논란이 되는 정책에 대한 불만과 해결 건의도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은 전했다.
원전·주52시간·규제개혁…대통령 만난 기업인들 건의 '봇물'
◇ 이재용 "젊은이에게 꿈·희망 주는 게 기업인 의무"
대한상의 박용만 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5대 그룹 총수급 가운데서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SK 최태원 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 부회장은 "기술·설비 투자를 확대해서 국가 경제에 일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뒤 최근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다운턴(하락국면)'에 따른 실적 차질을 염두에 둔 듯 "기업인이라면 자만하지 않고 하락 사이클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또 "제가 두 아이의 아버지여서 그런지 젊은이들의 고민도 새롭게 다가온다.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게 기업인의 의무"라고 말했으며, 지난해 발표한 일자리 창출 계획에 대해서는 "숫자도 중요하지만 좋은 일자리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밖에 이 부회장은 문 대통령에게 "기업의 목소리에 귀를 더 기울여 주시고, 기업들이 신바람이 나도록 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전날부터 이어진 최악의 미세먼지를 언급하며 "앞으로 전기차와 수소차 개발에 많은 신경을 써서 미래 먹거리 개발에 기여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또 지난해 대내외 악재에 따른 실적 부진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그런 분야를 개척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최태원 회장은 정부가 강조하는 '혁신성장'에 대해 "정말 반가워할 얘기이고 잘됐으면 한다"고 평가한 뒤 3가지 구체적인 당부 사항으로 실패에 대한 용납, 비용 부담을 낮추기 위한 환경 조성, 인재 육성 등을 제시했다.

최 회장은 또 SK그룹이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사회적기업 육성 사업과 관련, "사회적기업과 관련된 법들이 (입법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면서 "어떻게 할 것인지 구상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행사에서 가장 먼저 질문 기회를 얻은 KT 황창규 회장은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규제가 지나친 측면에 있다면서 비식별정보(가명·익명 정보) 등에 대한 활용도를 높여야만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규제 완화를 요청했다.
원전·주52시간·규제개혁…대통령 만난 기업인들 건의 '봇물'
◇ 광주형 일자리·근로시간 단축 등 기업인 애로 호소
예정 시간보다 약 30분을 넘기면서 2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행사에서는 주요 그룹 총수들보다는 중견기업과 지역 상공인들에게 질문 기회가 많이 주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가장 눈길을 끈 기업인은 창원상의 한철수 회장이었다.

최근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는 한 회장은 의사 허락을 받고 어렵게 행사에 참석해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강한 어조로 요청했다.

한 회장은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업체와 협력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원전 기술이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면서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에 대한 여론 수렴을 해달라"고 호소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현재 건설 중인 원전들도 있으니 장기적으로 전력 수급에 큰 문제가 없다"고 답했으며,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전세계적으로도 원전을 줄여가는 분위기"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상의 정창선 회장은 최근 난항을 겪는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관심을 요청했으며, 인천상의 이강신 회장은 인천 영종도와 강화도를 잇는 '서해남북평화도로'가 국책사업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요청했다.

일부 중견기업인들은 최저임금 문제와 관련해 외국인 노동자 등에게 일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건의했으며, 외국인 연수생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 "정부 성의 느꼈다…시간 부족해 아쉬워"
박용만 회장은 이날 행사가 끝난 뒤 "민감한 이슈를 포함해 기업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렸다"면서 "즉답을 할 수 없는 간단치 않은 이슈가 많았음에도 현장의 목소리가 잘 전달됐으리라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첫 만남으로서 큰 의미가 있었고, 앞으로도 이런 자리가 자주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울산상의 전영도 회장도 "처음에는 많이 긴장했지만 질의응답이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고조됐다"면서 "민감한 주제에 대한 즉석 질문이 이어졌지만 문 대통령이 성의있게 답변을 잘 해주셨다"고 만족을 표시했다.

이날 행사에는 기업인 128명이 참석했으나 시간이 부족해 상당수가 질문 기회를 얻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태백상의 박인규 회장은 "기업 애로사항을 듣고 장관들이 답변하는 방식의 대회에서 2시간은 너무 짧았다"면서 "탄광 지역 황폐화 문제 등에 대해서는 대한상의 회장에게 편지로 건의사항을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춘천상의 이대호 회장도 "제2경춘국도, 서울-춘천 고속도로의 철원 연장 등 지역 현안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기업인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해법을 모색한다는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행사 준비 과정과 형식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았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와 기업 간 대화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이런 인위적인 행사는 자연스럽지 않다"면서 "특히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인들이 내놓은 여러 건의에 대한 정부 측 답변은 모두 '현재 기조에 변화 없다'는 것이어서 아쉽다"고 지적했다.
원전·주52시간·규제개혁…대통령 만난 기업인들 건의 '봇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