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 ‘김정은 신년사’ 관철 군중대회 > 지난 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관철을 다짐하는 평양시 군중대회가 열렸다고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이 5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 北 ‘김정은 신년사’ 관철 군중대회 > 지난 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관철을 다짐하는 평양시 군중대회가 열렸다고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이 5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사진)이 일본 오키나와와 미국령 괌에 있는 미국 핵무력의 후방 배치 필요성을 언급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 조건으로 달긴 했지만 공개석상에서 미국의 동북아시아 ‘핵우산’ 철수를 수면 위로 올린 것이어서 그 배경과 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핵우산’ 논쟁 점화되나

문정인 특보 "국립외교원, 美의 '핵우산' 철수 연구 진행"
문 특보는 6일 KBS가 주최한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과의 대담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지면 우리도 북한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측의 요구에 대해선 “미국의 핵우산 제거”라고 했다. 문 특보는 대북 정책에 관한 한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린다. 작년 5월엔 주한미군 철수 필요성을 주장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날 문 특보는 미국 핵우산 존폐와 관련한 논의가 정부 차원에서도 이뤄지고 있음을 내비쳤다. “추후의 논쟁”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비핵화에 대한 다양한 대안이 논의되고 있으며, 국립외교원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국립외교원은 외교부 직속의 국책 연구기관이다. 조세영 국립외교원장은 “북한이 비핵화를 하게 되면 핵을 가진 미·중·러 3국과 핵을 갖지 않은 남북한, 일본 등 3국이 평화롭게 공존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며 “역내 안전보장 질서를 만들기 위한 미래 건축 설계도를 그려보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문 특보의 발언과 정부 차원의 이 같은 움직임은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전망이다. 비핵화 개념을 미군의 동북아 핵우산 철수로 확대할 소지가 있어서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과의 핵협상 과정에서 줄곧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해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외부로부터의 전략자산을 비롯한 전쟁장비 반입도 완전히 중지돼야 한다”고 했다.

북한이 공개적으로 주한미군 및 핵우산 철수를 언급한 적은 없지만 미국 조야에선 북측의 의도에 줄곧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수미 테리 한국담당 선임연구원은 ‘9·19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핵 없는 한반도’에 대해 “궁극적으로 한·미 동맹 파기와 주한미군 철수, 그리고 미국의 핵우산 철폐를 의미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북핵 협상, 다자외교 틀로 바뀔 수도

문 특보는 올해 북한 비핵화 협상이 다자외교의 틀 속에서 진행될 것이라는 점도 예고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송 전 장관이 김정은의 신년사 중 ‘새로운 길’이란 발언과 관련해 핵무장으로의 회귀 가능성을 언급하자 “그것은 새로운 길이 아니라 낡은 길”이라며 “새로운 길은 외교적 해법을 의미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조선반도의 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도 적극 추진하여 항구적인 평화보장 토대를 실질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특보는 루디거 프랑크 오스트리아 빈대학 교수가 최근 38노스에 기고한 글을 인용해 “북한이 대중, 대러 외교를 강화하면서 새로운 생존공간을 만들려 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자신들이 평화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데 미국이 응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차원이기도 하다”며 “한반도 평화를 원하는 국가끼리 지역질서를 만들자는 생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송 전 장관은 “북한이 중국, 러시아, 한국을 (같은 진영으로) 묶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대목”이라며 “향후 평화체제 구축과 동북아 다자안보회담 주장에도 북한의 이런 셈법이 깔려 있다는 걸 간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 특보는 미·북 비핵화 협상 교착 상태를 돌파하기 위한 당장의 조치로 북한의 ‘행동’을 촉구했다. 풍계리 핵실험장 등에 대한 국제 사찰을 조속히 이행해야 현재의 정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북한이 행동에 나서지 않는 등) 지금 이대로 가면 (2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 등이) 상당히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했다.

문 특보는 현재 미·북 비핵화 협상을 ‘행동 대 행동’이 아니라 ‘말 대 말’의 과정으로 진단했다. 양쪽 다 비핵화를 위한 실질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동창리 장거리탄도미사일(ICBM) 엔진시험장 폐쇄 등을 비핵화를 위한 ‘행동’이라고 강조해왔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