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8시12분 도라산역을 출발한 열차는 북한 판문역까지 약 7.3㎞를 천천히 달렸다. 이날 개성에서 열린 남북한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에 참석할 남측 인사 100여 명을 태운 열차는 군사분계선을 통과해 40분 만에 개성공단이 보이는 판문역에 도착했다. 착공식 단상 좌우엔 ‘우리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 평화번영의 새시대를 열어나가자’, ‘민족의 혈맥을 이어 평화번영의 미래를 열어나가자’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이날 행사에는 남북 및 중·러·몽골 고위 인사 등 총 200여 명이 참석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비롯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주승용 국회 부의장, 홍영표 민주당·김관영 바른미래당·장병완 민주평화당·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 등 여야 4당 원내대표가 참석했다.

원내대표 중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만 불참했다. 조 장관은 “세 번 전화하고, 문자도 보냈는데 회의가 있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했다.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하는 가불 착공식”이라고 말했다.

북측에선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주빈으로 방강수 민족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김윤혁 철도성 부상, 박호영 국토환경보호성 부상 등이 참석했다. 이선권은 ‘9·19 평양 정상회담’ 당시 만찬장에서 우리 기업인들을 향해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고 발언해 물의를 일으킨 인물이다. 이선권은 이를 의식한 듯 이날 행사에서 말을 아꼈다. 착공사도 김윤혁에게 맡겼다. 소감을 묻는 질문엔 “감개무량하다”고만 했다.

이번 행사는 지난달 초 미·북 고위급 회담 무산 이후 북한 고위 인사가 공식 행사에 처음 등장해 주목받았다. 하지만 북측은 ‘민족 자주’만을 외쳐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드러냈다. 김윤혁은 “남의 눈치를 보며 휘청거려서는 어느 때 가서도 민족이 원하는 통일연방을 실현할 수 없다”며 “북남 철도·도로 협력의 동력도 민족 내부에 있고 전진 속도도 우리 민족의 의지와 시간표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날 남북은 행사 뒤 오찬을 따로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애초 행사 기획 단계부터 그렇게 결정됐다”며 “다른 뜻은 없다”고 말했다.

개성공동취재단·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