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강릉선 KTX 탈선 등 연이은 열차 사고에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공기업의 과도한 경영합리화, 민영화 시도, 운영·시설 분리 등의 문제가 방치된 게 사고의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전문성 부족, 기강 해이 등을 반성하기는커녕 전(前) 정권들이 추진한 정책 탓으로 돌린 것이다. 그러면서 “공공성을 더 확보해야 안전하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사고에 대한 진단도 처방도 엉뚱하기 그지 없다.선진국들은 운영·시설 분리와 경쟁체제를 통해 민간투자를 끌어들이고 경영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다. 안전 문제도 이런 흐름 속에서 소비자 편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접근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철도회사를 공기업으로 놔둬야 안전하다”는 ‘공공성 도그마’에 막혀 있다.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가 철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민영화를 추진했지만 철도노조 등의 반대로 무산된 것부터 그렇다. 그 뒤 노무현 정부는 민영화 대신 지금의 철도공사로 방향을 틀면서 시설(철도시설공단)과 운영(코레일)을 분리했지만, 철도노조·시민단체 등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재통합을 요구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어렵사리 도입된 코레일과 SR(수서고속철 운영사) 간 제한적인 경쟁체제조차 원점으로 돌아가게 생겼다.철도 구조개혁을 반대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민영화나 경쟁체제, 경영 효율화가 되면 요금이 폭등하고 안전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부 여당도 여기에 동조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공기업 체제에서 철도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전 불감증이 위험 수위를 넘은 코레일이 이대로 SR까지 통합하면 앞으로 수서고속철 이용 승객까지 매일 불안에 떨어야 할 판국이다.경쟁과 효율이 없는 공공성이 안전에 더 위험하다는 건 서울교통공사를 봐도 알 수 있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통합됐지만, 구의역 사고 교훈은 사라진 채 잦은 사고에 시민들의 불안이 더욱 커지고 있다. 빗나간 진단, 잘못된 처방을 지금이라도 바로잡는 일이 시급하다.
KTX 강릉선 탈선사고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11일 사장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7년여 만에 발생한 대형 사고를 수습하지도 않은 채 사표를 내자 무책임한 처사라는 지적이 쏟아졌다.오 사장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2월 취임사에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 코레일의 사명이자 존재 이유’라며 안전한 철도를 강조해왔으나 최근 연이은 사고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사죄의 뜻과 함께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지난 2월 취임한 지 10개월 만이다. 오 시장은 2021년 2월까지 예정된 임기의 3분의 1도 채우지 못하고 사장 자리에서 내려오게 됐다.오 사장은 사퇴 이유를 밝히면서도 이번 사태가 지난 정부 때 추진한 ‘공기업 민영화’에서 촉발된 것이라며 ‘남탓’을 했다. 그는 “그동안 공기업 선진화라는 미명 아래 추진된 대규모 인력 감축과 과도한 경영합리화, 민영화, 상하 분리 등 우리 철도가 처한 모든 문제가 방치된 것이 이번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본다”며 “철도 공공성을 확보해 우리 사회가 더 안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정치권에서도 오 사장의 사퇴를 두고 “무책임한 처사”라는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져나왔다. 이날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긴급현안 질의에서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은 “사고와 관련해 국민이 궁금해하는 점을 소상히 밝히고 그 이후에 거취를 정해야 한다”며 “자신에게 정치적인 부담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 사퇴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비판했다.홍철호 한국당 의원도 “사퇴하라고 했던 것은 (사고를) 수습한 뒤 사퇴하라는 의미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야당은 지난 3주간 연달아 발생한 11건의 철도 관련 사고를 지적하면서 “문재인 정부 낙하산 인사의 폐해”라고 입을 모았다. 김상훈 한국당 의원은 “코레일의 전체 37명 임원 중 13명이 ‘낙하산 인사’”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김석기 의원은 코레일 해고자 98명의 복직 문제를 거론하면서 “대법원에서 적법 절차에 따라 해임된 사람들이 다시 채용됐다. 이렇게 기강이 확립되지 않은 곳에서 누가 안전을 챙기겠느냐”고 물었다.오 사장은 국회의원들의 거듭되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날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 전체회의에 불참했다. 전체회의는 강릉선 KTX 철도사고 등 현안보고를 안건으로 열렸다.이날 국토위에 참석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번 탈선의 원인은 선로 변환기의 전선 불량 때문으로 보인다”며 “시공과 유지·보수 단계에서 점검했다면 예방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민간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종합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서기열/배정철 기자 philos@hankyung.com
국회 현안질의…철도시설공단, 선로전환기 전수조사야당 의원들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가 사고 불러"강릉선 KTX 탈선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 선로전환기 관련 부품이 설계부터 잘못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 부품을 한 업체가 공급해 다른 지점도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김철민 의원은 11일 국회에서 열린 KTX 사고 관련 현안질의에서 이같이 밝히고 강릉선 전체 시스템에 대한 긴급 점검을 당부했다.김 의원은 "문제의 선로전환기 관련 부품은 애초에 설계가 잘못된 것으로 파악됐다"며 김상균 철도시설공단 이사장에게 "강릉선에 선로전환 시스템이 몇 군데 설치돼 있느냐"고 질의했다.김 이사장이 "강릉선에는 39곳이 설치돼 있다"고 답하자 김 의원은 "이 제품은 한 업체가 공급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김 의원은 "한 개 업체가 설계 도면을 만들어서 납품했다면 다른 제품들도 (전부) 위험성이 있는 것은 아니냐"고 우려를 표명했다.이 제품의 설계는 기본 도면이 있고 설치하는 장소마다 설계가 조금씩 변형되는 식으로 작성된 것으로 전해졌다.이에 김 이사장은 "아직은 항공철도조사위원회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그 결과에 따라 전체적으로 파악해봐야 할 것 같다"며 "현재 선로전환기와 관련해 전수조사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같은당 윤관석 의원이 강릉선 모든 구간에서 설계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온 데 대한 의견을 묻자 정인수 코레일 부사장은 "다른 곳에서도 그럴 수 있다고 보고 긴급 점검을 지시했다"며 "13일까지 철길이 두개로 나뉘는 '분리개소'에 대해 먼저 점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강릉선 개통 후 사고가 발생하기 전 선로전환기의 이상작동이 두 차례나 감지됐지만 코레일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자유한국당 함진규 의원은 "강릉선 개통 후 2차례 이상 신호가 떴는데 코레일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아 사고를 막지 못했다"고 질타했다.이에 정 부사장은 "선로전환기의 접촉이 불량이면 이상 신호가 뜨는데, 앞선 두 차례 신호는 1분 이내에 해제돼 정상으로 돌아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변환기에 대해 긴급 조사에 들어갔다"고 말했다.이날 현안질의에서는 전문성이 부족한 낙하산 인사가 열차 안전사고로 이어졌다는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김상훈 자유한국당 의원은 "코레일 본사와 5개 자회사 임원 37명 중 낙하산은 13명에 달한다"라며 "낙하산 중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팬카페 카페지기까지 포함돼 있는데, 이런 인사 때문에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같은 당 홍철호 의원은 사의를 표명한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사고 직후 사고가 추운 날씨 때문이라고 언급한 것과 관련, "날씨가 추워졌다면 그 때문에 전자기기에 문제가 생겼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와야 할 텐데 자세한 설명을 하지는 못했다"며 "코레일 사장이 동네 아저씨냐"라고 질타했다.박덕흠 의원은 "낙하산 인사를 하더라도 착지할 곳을 잘 찾아야 할 것인데, 전문성 없는 인사를 앉히다 보니 사고가 났다"고 언급하기도 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