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아르헨티나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미·북 정상회담 조기 개최와 북한 비핵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

두 정상의 양자회담은 이번이 여섯 번째이며, 지난 9월 미국 뉴욕에서 회담한 이후 약 두 달 만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G20 정상회담장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해 미·북 정상회담이 이른 시일 내에 열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답보 상태인 미·북 비핵화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해 또 한 차례 중재자로 나선 셈이다.

문 대통령은 미·북 고위급 회담이 지연되고 있는 것과 관련, 북측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안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 의견을 나눴다. 미·북은 지난 10월7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방북 당시 비핵화 프로세스와 2차 미·북 정상회담 일정 등을 이른 시일 안에 협의하기로 했지만 두 달 가까이 특별한 진전 없이 소통채널 가동조차 중단한 상태다.

배석자 없이 통역만 대동한 채 30분간 열린 이날 단독회담에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도 비공식 의제로 다룬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답방을 통해 미·북 협상을 추동하기 위한 조건 등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청와대도 ‘연내 김정은 서울 답방’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논의 중”이라고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30일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평양 정상회담에서의 합의사항이며 남북한 모두 이행 의지를 갖고 있다”며 “이에 따라 남측에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준비를 해왔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정부는 오는 13~14일 이틀간 예약을 받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남산서울타워 측에 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중심부에 있는 ‘서울 상징물’인 남산서울타워 전망대에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함께 올라 서울 도심 경관을 살펴보는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의 부정적인 기류와 달리 미·북 대화를 견인하기 위해 연내 서울 답방을 성사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한편 이날 한·미 정상회담의 형식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백악관이 “이날 회담이 공식 양자회담(formal bilaterals)이 아니라 ‘약식(풀 어사이드·pull aside)’으로 진행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풀 어사이드는 다자회의장 등에서 잠깐 회담장을 빠져나와 하는 약식대화를 뜻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미국이 회담의 격을 낮춰 한국을 홀대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두 정상이 통역만 대동해 만나자고 미국이 먼저 풀 어사이드 회담을 제의했다”며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1 대 1로 회동하는 게 훨씬 더 좋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 집중하면서 북핵 문제가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으로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도 예정대로 형식과 의전을 갖춘 공식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또 미국과 일본, 인도 간 3자 공식회담도 열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는 만찬도 함께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 측이 양자회담을 제의해온 시간과 우리 측 일정이 맞지 않아 결과적으로 여러 얘기가 흘러나왔던 것뿐”이라며 “공식 정상회담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미는 회담을 불과 5시간 남짓 앞두고서야 참모들은 배석하지 않고 통역만 참석하는 것으로 회담 방식을 확정하는 등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손성태/김채연 기자 mrh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