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29일 신일철주금에 이어 일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에게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이 있었다고 해도 원고들의 개인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전범기업들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이날 판결 직후 성명을 통해 “국제법 위반”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대법원 2부는 이날 강제징용 피해자 5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도 원심 판결대로 원고 승소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같은 시각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4명과 유족 1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도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달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확정한 뒤 대법원 소부에서 처음으로 같은 취지의 선고가 내려진 것이다.

일본 정부는 즉각 대응했다. 고노 외무상은 이날 오전 성명을 발표해 “이런 판결은 한·일 청구권협정에 분명히 반(反)한다”며 “두 판결은 국교정상화 이후 쌓아온 한·일 우호협력 관계를 근본적으로 뒤집는 것으로 극히 유감”이라고 반발했다. 고노 외무상은 국제재판 등 대응조치를 언급하며 앞으로 공세 수위를 계속 높일 것을 예고했다.

일본 외무성은 또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했다. 아키바 다케오 외무성 사무차관은 이 대사에게 “힌·일 국교 정상화 이후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뒤집는 판결은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항의했다고 NHK 방송이 전했다. 일본 외무성은 지난달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판결과 21일 ‘화해·치유재단’ 해산에 이어 3번째로 이 대사를 초치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반발에 대해 유감 표명을 했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외교부 정례브리핑에서 “일본 정부가 계속해서 우리 사법부 판결에 대해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자제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날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선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고통과 상처 치유를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대법원의 첫 판결 이후 일본의 반발에 맞서 종합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해나간다는 방침이다.

한·일 관계는 경색 국면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30일 대법원 판결 이후 화해치유재단 해산 결정과 이날 대법원 판결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현재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각급 법원에서 10여건이 심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건에서도 전범기업 측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