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현민 /사진=연합뉴스
탁현민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참석차 5박8일 일정으로 27일 출국길에 올랐다. 하지만 해외 순방에서 대통령의 일정 전반을 책임질 의전비서관이 공백 상태인 탓에 ‘지구 한바퀴’를 도는 연내 마지막 순방에 대한 불안감이 제기되고 있다.

27일 청와대에 따르면 음주운전으로 직권면직 처리된 김종천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을 대신해 홍상우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이번 순방에서 문 대통령의 의전을 책임진다. 문 대통령의 세부 동선 등 5박 8일간 일정을 책임질 핵심 참모가 빠진 채 ‘한국-체코-아르헨티나-뉴질랜드-한국’ 순으로 지구를 한바퀴 도는 올해 마지막 순방이 진행되는 셈이다. 청와대에서는 “기존 의전비서관실 인력과 현지 외교부 인력 등이 함께하기 때문에 의전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의전 참사’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올 해외 순방에서는 유독 ‘의전 실패’라는 표현이 많이 등장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싱가포르 순방에선 문 대통령이 홀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 전세계에 전해졌다. 미 워싱턴포스트의 외교·안보 담당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은 당시 자신의 트위터에 “문 대통령이 펜스 부통령을 15분 동안 기다리며 완전히 잠에 빠져 있다”며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기다리고 있는 문 대통령의 사진을 올렸다. 관련 사진은 국내·외에 전해지며 펜스 부통령의 외교적 결례라는 비판과 함께 청와대의 의전 실패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청와대 의전담당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미국 측에서 출발한다는 얘기를 듣고 문 대통령도 이에 맞춰 면담 장소로 이동했지만, 펜스 부통령이 갑작스레 한국 측 자료를 살펴보느라 지체하면서 돌발상황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와대 안팎에서는 취재진들이 배치돼있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을 면담장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기다릴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달 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렸던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선 문 대통령이 각국 정상들과의 단체사진에 참여하지 못하는 일도 벌어졌다. 당시 문 대통령은 연설 준비를 위해 다른 층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이후 주최 측의 연락을 받고 단체사진 촬영장소로 이동했지만 엘리베이터가 제때 오지 않아 시간을 놓쳤다는게 청와대 측의 해명이다. 지난 9월 평양 공동선언문 서명에서 등장한 ‘네임펜’ 역시 대표적 의전 참사로 꼽힌다. 김 전 비서관은 서명을 준비하고 있던 문 대통령에게 국산 네임펜을 전달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사용한 고급 만년필과 대조됐다. 이후 ‘국격에 맞지않은 펜을 전달했다’는 비난이 쏟아지며 국내 여론은 들끓었다. 펜을 전달한 김 전 비서관 경질론까지 쏟아지기도 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의전비서관 자리가 갑작스럽게 공석이 되자 고심에 빠졌다. 업무 특성상 오래 비워둘 수 없는 자리인데다 마땅한 후보군을 급히 찾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청와대는 동시에 탁현민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의 거취 문제도 고민해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김 전 비서관이 의전비서관에 깜짝 발탁된 후 탁 행정관은 청와대에 사의를 표했다. 그만두려는 이유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일각에서는 의전비서관으로 승진 가능성을 염두해뒀던 탁 행정관이 인사에 불만을 느꼈고 이 때문에 청와대를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라는 추측이 쏟아졌다. 당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탁 행정관을 만류했다. 그러면서 “가을에 남북정상회담 등 중요한 행사가 많으니, 그때까지만이라도 일을 해달라”라며 “첫눈이 오면 놓아주겠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서울에 첫눈이 내린 지난 24일을 하루 앞두고 김 전 비서관의 음주운전이 적발됐다. 청와대는 자칫 의전비서관과 청와대 행사를 진두지휘해 온 탁 행정관이 모두 자리를 비울 경우 이에 따른 업무 공백이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탁 행정관을 의전비서관으로 승진 발탁하는 방안도 조심스레 거론되지만, 연내 청와대를 떠나겠다고 알려진 상황에서 다소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분석이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