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다고 21일 공식 발표했다. 출범한 지 2년4개월 만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국제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국가와 국가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게 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날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 아래 재단 해산을 추진하게 됐다”며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명예·존엄 회복을 위한 정책 추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화해·치유재단은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5년 12월28일 한·일 양국 간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가 10억엔(약 107억원)을 출연해 이듬해 7월28일 설립됐다. 재단 해산은 위안부 관련 한·일 외교를 ‘2015년 합의’ 이전으로 사실상 되돌리겠다는 의미다. 다만 진 장관은 ‘2015년 합의’에 대한 파기나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일본 정부는 즉각 대응 성명을 냈다. 아베 총리는 “한·일 위안부 합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며 기존 입장을 강조했다. 아키바 다케오 외무성 사무차관도 이수훈 주일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한국 정부의 결정에 항의했다. 일본은 1965년의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이어 위안부 합의까지 한국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깼다고 주장하며 공세 수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2015년 합의’에도 불구하고 화해·치유재단에 대해선 논란이 지속돼왔다. 재단 설립의 근거가 된 위안부 합의에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문구가 명시된 것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와 이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의 반발이 끊이지 않았다. 10억엔의 의미에 대해서도 법적인 보상금이냐 단순 위로금이냐에 관한 해석이 분분했다.

남은 문제는 출연금 10억엔의 처리다. 현재 10억엔 중 44억원은 위안부 피해자 및 가족에게 지급됐고, 5억여원은 재단 직원들의 인건비와 임차료로 사용했다. 10월 말 기준 57억8000만원 정도가 남아 있다. 정부는 일본에 출연금 전액을 돌려주는 방안을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정부 예산으로 편성한 양성평등기금 사업비 103억원을 활용할 예정이다.

연이은 과거사 문제로 한·일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달 30일엔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손해배상 판결로 한·일 관계가 경색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는 29일에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 손해배상 재판 판결이 예정돼 있다. 이 판결에서도 배상으로 판결이 날 가능성이 높아 양국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주일대사를 지낸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은 “양국 관계가 계속 과거에 머물고 있다”며 “강제징용 문제는 양국 정부와 관련 기업이 만나 피해자를 보상해주는 기금을 설립하고, 위안부 문제는 양국 정부가 피해자의 마음을 풀어줄 적절한 방법을 찾는 방식으로 하루빨리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