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다고 21일 공식 발표했다. 출범한 지 2년4개월만이다. 지난달 30일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손해배상 판결로 한·일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이날 이뤄진 재단 해산 결정으로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을 전망이다.

여성가족부는 이날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추진하고, 이를 위한 법적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진선미 여가부 장관은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 아래 다양한 의견수렴 결과 등을 바탕으로 재단 해산을 추진하게 됐다”며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명예·존엄 회복을 위한 정책 추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합의 파기나 재협상 요구는 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기존 입장과 같이 이번 발표에도 합의 자체에 대한 표현은 담기지 않았다.

화해·치유재단은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엔으로 2016년 7월28일 설립됐다. 그러나 위안부 합의에 명시된 ‘불가역적 해결’과 10억엔의 성격 등을 놓고 위안부 피해자들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진통을 겪어왔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위안부 합의를 재검토하고, 10억 엔을 전액 정부 예산으로 충당키로 하면서 재단의 기능은 중단된 상태다. 정부는 지난 1월 화해·치유재단에 대해 국민 의견을 수렴해 처리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남은 문제는 출연금 10억 엔(107억 원)의 처리다. 10억엔 중 44억원은 위안부 피해자 및 가족에게 지급됐고, 5억여원은 재단 직원들의 인건비·임대료로 사용했다. 10월 말 기준 57억8000만원 정도가 남아있다. 정부는 지난 7월 정부 예산으로 편성한 양성평등기금 사업비 103억원과 함께 위안부 피해자 등의 의견을 수렴해 처리방안을 마련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화해·치유 재단 해산 법적 절차까지는 6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한국의 재단 해산 결정 발표 후 관저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제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국가와 국가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게 된다”고 강력 반발했다. 이어 “한·일 위안부합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며 기존 입장을 강조했다. 아키바 다케오 외무성 사무차관은 이수훈 주일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우리 정부의 결정에 항의했다. 일본은 1965년의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이어 위안부합의까지 한국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깼다고 주장하며 공세 수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연이은 과거사 문제로 한·일 관계는 안갯 속 형국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는 29일에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 손해배상 재판 판결이 있다. 이 판결에서도 배상으로 판결이 날 가능성이 높아 양국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재단 해산 문제와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별개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강제징용 판결과 재단 문제를 연계해서 처리하는 것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과거사 문제와 무관하게 북핵, 경제 등 현안과 관련해선 일본과 협조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전문가들은 과거사 문제로 한일간 감정싸움으로 확산되고 있어 조속히 이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일대사를 지낸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은 “양국 관계가 계속 과거에 머물고 있다”며 “강제징용 문제는 양국 정부와 관련 기업이 만나 피해자를 보상해주는 기금을 설립하고, 위안부 문제는 양국 정부가 피해자의 마음을 풀어줄 적절한 방법을 찾는 방식으로 하루빨리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