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내년 1월 이후로 미룬 데 이어 대북 독자제재 카드를 꺼냈다.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하기 전엔 제재를 풀지 않겠다는 ‘선(先)비핵화, 후(後)대북제재 완화’ 원칙을 강조하고 2차 미·북 정상회담 전 북한을 최대한 압박해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미 재무부는 25일(현지시간) 북한을 위해 자금 세탁, 상품·통화 위조, 뭉칫돈 밀반입, 마약 밀거래 등을 한 혐의로 싱가포르 무역회사 위티옹과 해상연료회사 WT마린, 이들 기업의 관리 책임자인 싱가포르 국적의 탄위벵(41)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이들은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고 미국인과 거래가 금지된다. 미 법무부는 이날 이들을 기소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탄위벵을 지명 수배했다.

재무부에 따르면 탄위벵과 그의 회사 동료는 2011년께부터 수년간 북한을 대신해 수백만달러어치의 물품을 계약했다. 제재망을 피하기 위해 지급 추적을 교란시키며 거래를 계속했고, 계좌 이체가 거부되자 뭉칫돈을 직접 북한인에게 건네기도 했다. 싱가포르에서 차세대 유망 기업가로 알려진 탄위벵은 2011년 글로벌 회계법인 언스트앤영이 주는 ‘올해의 젊은 기업인상’을 받기도 했다.

미 재무부는 이날 북한의 불법적인 활동을 지원하는 어떤 개인이나 기관, 선박에 대해서도 국적과 상관없이 제재를 부과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도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 때까지 제재를 계속 이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미국은 지난 4일 북한과 무기·사치품 불법 거래를 한 혐의로 터키 기업 한 곳과 터키인 2명, 북한 외교관 1명을 제재했다. 지난 8월엔 정제유 환적 선박을 제재하는 등 모두 세 차례 대북제재를 발표했다. 6월엔 2014년 소니픽처스 해킹 등 사이비 공격을 주도한 북한 해커를 처음 기소했다.

북한은 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폐기 약속 등 지금까지 내놓은 조치에 대한 미국의 ‘상응 조치’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북한의 ‘힘겨루기’가 이어지면서 2차 미·북 정상회담 조율을 위한 실무협상 등도 늦어지고 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