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전날 ‘5·24 제재 해제 검토’ 발언에 이례적으로 ‘승인(approval)’이란 강한 표현을 써가며 제동을 걸었다. 한국 정부에 대한 ‘주권 침해’ 논란의 소지가 있는 ‘승인’이란 단어까지 동원해 한국 정부의 제재 완화 움직임에 공개적으로 경고한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달 강 장관과 통화에서 남북한 군사합의서 내용에 대해 미국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만을 표출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한·미 공조에 이상기류가 부각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한국 정부의 5·24 제재 해제 검토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진 ‘(한국 정부와) 접촉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그들은 우리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같은 답변을 반복했다.

강 장관은 전날 외교부 대상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5·24 조치에 대해 “관련 부처가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범정부 차원의 검토는 아니다”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논란이 미국으로까지 번졌다. 5·24 조치는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대응해 이명박 정부가 취한 대북 제재다. 북한은 천안함 폭침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5·24 조치를 비난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11월6일 이후로 예정된 미·북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에서 대북제재에 ‘구멍’이 생기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여기엔 ‘남북관계가 미·북관계보다 너무 앞서간다’는 우려와 미국 여론의 부정적인 분위기도 감안됐을 가능성이 있다. 미 인터넷 매체 복스는 이날 “한국의 대북제재 완화가 트럼프(대통령)의 비핵화 계획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의 수석대변인이 됐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폼페이오 장관이 강 장관에게 전화 상으로 평양 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인 남북군사합의서에 대해 화를 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대북제재의 수위와 제재 해제 속도에 대해 한·미 간 입장 차이가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로버트 팔라디노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화를 냈느냐’는 질문에 직접 부인하지 않은 채 “한국과 매일 대화하며 긴밀히 협력한다. 많은 것에 대해 함께 얘기할 수 있다”고만 답했다.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실무협상은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팔라디노 부대변인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실무협상 시간표에 대해 “이 시점에서 발표할 출장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협상 장소도 아직까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이날 직접 진화에 나섰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모든 사안은 한·미 간 공감과 협의가 있는 가운데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외교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정부의 제재 해제 움직임에 강력한 경고장을 날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폼페이오 장관이 4차 방북을 다녀와서 제재 유지를 재차 강조했는데 한국 정부가 며칠 뒤에 제재 해제를 언급한 꼴”이라며 “한국 정부가 제재 문제에서 앞서가려고 하니까 트럼프 대통령이 일부러 거친 표현을 써가며 제동을 건 것”이라고 말했다.

김채연/박재원 기자/워싱턴=주용석 특파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