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 의장대 사열 >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8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부인 이설주와 함께 인민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 北 의장대 사열 >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8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부인 이설주와 함께 인민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공항 영접으로 시작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세 번째 회담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북한 의장대장(대령)은 문 대통령을 국가원수인 김정은과 같은 ‘각하’로 칭했다. 국가 정상에 대한 존경을 의미하는 의장대 분열과 예포 발사 등도 남북한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파격 형식’이었다.

처음으로 부부 동반 마중 나온 김정은

두 정상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116일 만에 다시 얼굴을 맞댄 것은 18일 오전 10시10분께였다. 3분 전인 10시7분께 김정은과 부인 이설주는 환영 인파가 지르는 ‘만세’ ‘조국통일’ 함성 속에 공항 청사에서 나와 문 대통령을 마중하기 위해 전용기로 향했다. 2000년 6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비행기와 꽤 떨어진 곳에서 남측 정상을 맞았지만 이번엔 전용기 트랩 바로 앞까지 마중 나왔다.

2007년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한경DB
2007년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한경DB
김정은은 전용기 트랩을 내려온 문 대통령이 양손을 활짝 펴자 좌우 번갈아서 세 차례 포옹하는 유럽식 인사로 반겼다. 이미 두 차례 정상회담을 한 터라 문 대통령은 만면에 웃음을 띤 채 호응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1분여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2007년 10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오른손 한 손만 내민 것과 대조를 보였다.

매번 혼자 영접한 아버지와 달리 김정은은 부인 이설주와 함께 마중 나왔다. 김정은 부부가 2012년 집권 후 국가 정상을 공항에서 맞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공식 영접 행사는 인민군 의장대 사열로 시작됐다. 북한의 의장대장인 김명호 육군 대좌는 “대통령 각하, 조선인민군 의장대는 각하를 영접하기 위하여 정렬하였습니다”라고 보고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 함께 레드카펫을 걸으며 도열해 있는 인민군 의장대로부터 ‘받들어 총’ 경례를 받았다. 두 정상은 사열 때를 빼고는 계속해서 대화를 나눴다. 2007년 노 대통령과 김정일은 인사말 외엔 별도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이후 진행된 분열 행사와 예포 발사였다. 전문가들은 이는 북측이 문 대통령을 한 국가의 정상으로 예우하고, 존경을 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방문 때도 국가원수에 걸맞은 의장 행사가 있었지만 의장대 분열 행사는 빠졌다. 사열은 국가원수나 지휘관 등이 도열한 군대 앞을 지나며 인사를 받는 행사다. 분열은 군대가 행진하며 단상에 서 있는 이에게 존경과 예의를 표하는 것이다.

21발의 예포 발사도 같은 맥락이다. 예포 21발 발사는 국가원수로 예우한다는 의미다. 대통령과 국왕 등 국가원수에게 21발을 발사하고, 부통령이나 총리는 두 발 적은 19발을 쏜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국빈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환영행사에서 21발의 예포를 발사하며 최고 예우를 갖췄다. 과거 두 차례 평양 정상회담 때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국기 게양과 국가 연주, 예포 발사를 생략하는 등 단출하게 의식이 치러졌다.

꽃다발·인공기와 함께 한반도기 처음 등장

2000년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있다. /한경DB
2000년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있다. /한경DB
문 대통령을 향해 ‘각하’란 표현을 썼다는 점도 주목된다. 2000년 6월 정상회담 당시 혁명음악대 책임자인 북한 대좌는 큰 목소리로 조선인민군 총사령관 등 김정일의 직함을 열거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을 마중하기 위해 나왔습니다”라고 인사했다. 하지만 이번엔 “대통령 각하”로 칭했다. 북한군에 각하로 호칭될 수 있는 인물은 김정은이 유일하다.

김정은은 영접 행사 내내 문 대통령을 극진히 예우하는 모습이었다. 문 대통령이 화동에게 꽃을 받거나 행사 막바지 차량으로 이동할 때 오른손으로 번번이 방향을 알려줬다. 두 정상이 분열대 위에서 서로에게 상석을 양보하다 시간이 지연되기도 했다. 그러자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분열대로 뛰어 올라와 문 대통령에게 왼쪽 자리를 권하면서 상황을 정리했다.

순안공항에 마중 나온 수천 명의 북한 시민이 꽃다발·인공기와 함께 한반도기를 흔든 것도 파격이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기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항에는 ‘평양을 방문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어가자’는 간판도 걸려 있었다. 2000년, 2007년에는 시민들이 붉은색, 분홍색 꽃술을 들고 대통령을 맞았다.

문 대통령도 김정은의 환대에 깜짝 행보로 답했다. 문 대통령은 환영식이 끝날 무렵 레드카펫을 벗어나 평양 시민들에게 다가가 악수했다. 악수한 시민만 일곱 명이었다. 악수가 길어지자 김정은은 문 대통령의 허리에 손을 갖다대며 ‘이제 가시자’는 표시를 했다.

문 대통령은 공항 환영 인파에 허리를 90도 가까이 숙여 감사의 뜻을 전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도 의전 카펫을 벗어나 두 명의 시민과 악수하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말을 건넨 바 있다.

평양공동취재단/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