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북 특별사절단 파견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전화 통화를 하고 9월 유엔총회를 계기로 한·미 정상회담을 뉴욕에서 열기로 합의했지만 북한 비핵화 문제에선 상당한 인식차를 드러냈다. 최근 한·미 양국이 북한 비핵화와 남북한 관계 개선 문제를 놓고 자주 이견을 노출하면서 한·미 공조에 균열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이날 대변인 명의로 낸 보도자료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오전에 문 대통령과 통화했으며 두 정상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동의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FFVD)를 달성하기 위해 진행 중인 노력을 포함해 한반도를 둘러싸고 최근 전개된 국면에 관해 논의했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이어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위해 5일(한국시간) 평양에 특사를 보낼 예정이라고 밝힌 뒤 그 면담에 대해 설명하겠다고 약속했다”며 “두 정상은 이달 말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서 별도로 만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그러나 우리 정부가 강조한 남북 관계 개선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전날 양국 정상 통화와 관련해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비핵화 협상 및 남북 관계 진전 등 한반도 정세를 두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했다”며 “한·미 양국이 각급 수준에서 긴밀한 협의와 공조를 지속해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남북 관계 개선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기여할 것이라며 남북 관계 발전의 당위성을 강조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성과를 기대한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발표대로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 관계 개선 문제를 적극 지지한 것처럼 해석할 수 있지만 정작 백악관은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FFVD 원칙만 거듭 강조한 것이다.

한·미는 최근 미·북 비핵화 협상 교착 상태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를 둘러싸고 여러 차례 엇박자를 드러내왔다. 미국은 우리 정부가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조기 개소와 남북 철도 협력 등 대북 드라이브를 거는 것에 “남북 관계 문제는 북한 비핵화와 함께 보조를 맞춰야 한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특히 남북 연락사무소 개소와 관련해 “모든 유엔 회원국은 유엔 대북 제재를 완전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하는 등 우리 정부의 앞선 행보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번 대북 특사단 파견 문제를 두고도 미국은 선(先) 비핵화 조치를 강조한 반면 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이 비핵화의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남북 관계가 진전되면서 우리 정부가 대북 제재와 비핵화를 위한 국제 공조에서 이탈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