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여야가 합의 처리하기로 한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리는 일이 또다시 벌어졌다.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의 체계·자구를 심사하는 법사위가 법안 처리의 ‘병목 현상’을 불러일으킨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 29일 법사위는 전체회의를 열어 부실 징후가 있는 기업에 대한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을 허용케 하는 내용의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을 처리하려 했다. 이 법은 금융위원회의 요구를 반영해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하지만 법사위 소속인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관치금융이 확대될 우려가 있고, 시장에서 자발적으로 구조조정을 할 유인이 사라진다”는 이유를 들어 기촉법 처리를 반대했다. 채 의원의 이의 제기로 법안은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했고, 본회의에 상정도 못 했다.

채 의원은 “기촉법이 기존 채무자회생법안과 상충되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며 “법사위의 권한을 동원해 법안 처리의 발목을 잡은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국회 관계자는 그러나 “해당 상임위가 긴급히 처리해야 한다고 판단해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법안을 일방적으로 잡는 것은 명백한 권한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법사위가 다른 상임위에서 통과된 법안의 발목을 잡은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변호사 자격 소지자에게 세무사 자격을 자동 부여하는 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세무사법 개정안은 16대 국회부터 2003년, 2007년, 2009년 각각 제출돼 기획재정위를 통과했지만 번번이 법사위에 막혀 폐지됐다. 법사위 소속 의원 다수가 변호사 출신으로 “직업적 이해관계를 반영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여야 합의한 '기촉법' 제동… 다시 불거진 '법사위 갑질'
여야 지도부도 이른바 국회의 ‘상원(上院)’으로 불리는 법사위의 ‘갑질’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지난 7월 원 구성 당시 법사위원장을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가져가는 대신 다른 상임위 법안을 심사하는 법사위 제2소위원회 폐지 등을 골자로 한 제도 개선책을 마련하자고 여야가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후반기 국회가 구성된 지 40여 일이 지나도록 법사위 제도 개선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정치권 관계자는 “여야가 법사위의 월권을 견제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못하면 원 구성 때마다 막강한 권능을 가진 법사위원장 자리를 서로 차지하기 위한 샅바싸움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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