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사진)의 방북이 갖는 가장 큰 함의는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정세 급변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것임을 대내외에 밝힌다는 데 있다. 관심의 초점은 중국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다. 핵시설에 대한 ‘신고·사찰·폐기’라는 한·미의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 정책에 중국이 동조할 것인지, 아니면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협상 방식인 ‘살라미식 전술’의 후원자로 나설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다.

◆급진전하는 북·중 관계

시 주석의 방북설은 그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올 들어서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세 차례 중국을 방문, 시 주석을 만나면서 연내 답방은 기정사실화한 ‘상수’였다. 다만 언제 방문할 것이냐의 ‘시기’만 변수로 남아 있던 상황에서 시 주석이 북한 정권 수립일인 9·9절을 택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윤대엽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는 “중국 국가주석이 9·9절에 참석하는 것은 김정은 체제에 대한 중국의 공식적인 인정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더구나 시 주석은 2012년 취임 이후 단 한 차례도 북한을 방문하지 않았다. 직전 해인 2011년 11월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 북·중 관계는 급속히 냉각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한 김정은은 ‘베이징’을 향한 존경은커녕 잇따른 전쟁 위협으로 중국 수뇌부의 신경을 건드렸다. 2013년 북한은 3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그해 12월엔 북한 내 친중파의 핵심인 장성택을 숙청했다. 이로 인해 황금평 개발 프로젝트 등 북·중 간 공식적인 경제협력은 사실상 단절됐다.

이 같은 분위기를 전환한 것은 남북한 관계의 급진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이 미·북 간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중재자로 나서면서 북·중 관계도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이 예고됐던 올 3월 김정은은 첫 번째 방중을 단행한 이후 지난 6월19일 방중까지 올 들어서만 세 차례 시 주석을 만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부인 이설주와 함께 40일 만에 양강도 삼지연군 건설현장을 다시 방문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적대세력들의 집요한 제재와 압살 책동으로 난관이 조성되고 있다”며 대북 제재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부인 이설주와 함께 40일 만에 양강도 삼지연군 건설현장을 다시 방문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적대세력들의 집요한 제재와 압살 책동으로 난관이 조성되고 있다”며 대북 제재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연합뉴스
◆中, 중재에서 개입으로 전환하나

전문가들은 시 주석의 방북을 계기로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이 중대한 변화를 맞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북 간 관계 개선을 위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던 중국이 더 적극적인 관여 및 개입 정책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윤 교수는 “시 주석 이전의 중국은 남북 간 등거리 삼각외교를 펴왔으나 시 주석 취임 이후엔 일대일로 등 보다 팽창주의적 대외정책을 표방하고 있다”며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관건은 중국이 어떤 방향으로 북한을 유도할 것이냐다. 미국 국무부는 시 주석의 방중 소식이 전해진 18일(현지시간) “김정은이 합의한 대로 FFVD라는 목표로 귀결되는, 신뢰할 만한 협상에 북한이 반드시 진지하게 임할 수 있도록 중국이 자신의 고유한 지렛대를 사용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북 비핵화 협상의 교착 상황과 관련해 중국 개입론 내지 배후론을 여러 차례 꺼내 든 바 있다.

미 국무부가 언급한 ‘지렛대’란 북한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지배력이다. KOTRA에 따르면 지난해 북·중 무역 규모는 52억6000만달러로 북한 전체 무역액의 94.8%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핵보유국 북한’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때만 해도 중국은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았다. 중국 주도로 판을 짰던 6자회담의 결과물인 2005년 ‘9·19 합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도발에 나서면서 중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2009년 2차 핵실험 이후엔 100억달러 규모의 대북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등 ‘당근’을 제시하면서 핵 포기를 유도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의 한국 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 북한의 핵 보유로 인한 부작용을 중국 정부도 분명히 알고 있다”며 “다만 중국이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가 아니라 더 이상 말썽을 피우지 않는 ‘얌전한 핵보유국’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경우 문제가 꼬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