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는 남북한이 오는 9월 평양에서 3차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한 것과 관련해 한·미 공조를 강조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이 북한 비핵화 문제 해결과 분리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북 간 비핵화 협상이 진척이 없는 상황에서 남북 관계가 빠르게 개선되는 데 제동을 건 것이다. 청와대는 한·미 관계에는 이상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진화에 나서는 분위기다.

◆폼페이오, 방북 앞두고 FFVD 재확인

미 국무부 관계자는 13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일치된 대응을 하기 위해 한국과 긴밀히 접촉하고 있다”며 “남북 관계와 (북한) 비핵화를 분리해서 다뤄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도 남북 관계 개선과 북한 핵프로그램 문제 해결이 별개로 진전될 수 없다고 했다”며 문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상기시켰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때 미국 대표단 단장으로 한국을 찾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을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 비핵화 대화와 남북 대화가 별도로 갈 수 없다”고 말했다.

미·북 비핵화 협상이 6·12 미·북 정상회담 이후 2개월여간 교착 상태에 빠져 미국 내 북한 비핵화 회의론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남북 관계 개선은 비핵화 협상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 언론에서는 3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 소식에 대해 비핵화 협상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담은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달 중 4차 방북을 앞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이날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목표를 재확인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한국 국민에게 73주년 광복절 축하 메시지를 전하며 “우리는 한국과 북한의 FFVD에 대해 긴밀하게 공조해 나가기를 계속해 가면서 철통같은 동맹에 헌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북 관계 변수로 정상회담 택일 못해

청와대는 전날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정상회담 날짜를 합의하지 못한 이유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자 진화에 나섰다. 청와대 관계자는 “(날짜가) 확정이 됐는데 발표를 안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미정”이라며 “북한으로부터 북한 정권수립 70주년 기념일(9·9절)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전날 남북 정상회담 시기에 대해 “9월 초는 좀 어렵지 않겠냐”며 9월10일 이후라고 한 데 대해 문 대통령이 9·9절 참석을 피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등 온갖 해석이 나오자 직접 해명에 나선 것이다.

남북이 고위급 회담에서 정상회담 날짜를 특정하지 않은 것은 미·북 관계 변수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입장에선 미·북 협상에서 비핵화 문제에 진척이 없으면 남북 관계 발전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북한이 미·북 협상을 우선시하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3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 날짜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이달 방북 성과에 따라 연동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북이 이달 중 비핵화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다면 남북 정상회담도 9월 중순께 열릴 것으로 관측된다.

청와대 안팎에선 핵폐기 조치에 앞서 종전선언을 원하는 북한과 핵리스트 제출 및 핵폐기 시간표를 요구하는 미국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통해 절충안이 도출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청와대도 내부적으로 미·북 관계가 진전이 있는 상태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남북 관계에도 긍정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전 폼페이오 장관과 전화 통화를 통해 남북 고위급회담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공조체제를 이어가기로 했다.

◆北, 9·9절 행사준비 본격시작

북한이 9·9절을 앞두고 열병식을 준비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모습이 민간위성에 포착됐다. 14일 VOA에 따르면 민간 위성업체 ‘플래닛 랩스’가 지난 11일 오전 10시54분 평양 일대를 촬영한 위성사진을 보면 김일성 광장에 직사각형 형태로 도열한 인파가 포착된다. 인파는 김일성 광장의 중앙 부분에 집중됐다. VOA는 과거의 열병식 준비 과정에서 볼 수 있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예전에는 김일성 광장 전체를 붉게 물든 것과 달리 이번에는 전체 광장의 약 10% 면적에서만 인파가 목격됐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