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평양 인근에서 비밀리에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제조 중인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포착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북 간 북한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미 정보기관을 통해 북한의 핵시설 은폐설 등이 제기된 데 이어 새로운 ICBM 제조 정황까지 포착되면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WP는 미 정보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 북한이 평양 외곽에 있는 산음동 미사일 종합연구단지에서 액체연료를 쓰는 ICBM을 제조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미 정보당국이 입수한 증거에는 최근 몇 주간 촬영된 위성사진이 포함됐다. 이를 통해 북한이 해당 공장에서 비밀리에 ICBM을 최소 1기 이상 제작 중인 것으로 분석됐다. 산음동 미사일 종합연구단지는 미 동부 해안을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ICBM급 화성-15형을 비롯해 북한의 ICBM 2기를 생산한 곳이다.

로이터통신도 미 정부 고위관료의 말을 인용해 미국 정찰 위성이 지난해 ICBM을 생산한 산음동 기지 안팎으로 화물차를 비롯한 차량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했다고 전했다.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프로그램의 제프리 루이스 소장은 “매일 산음동 기지를 드나드는 화물차를 비롯한 차량의 이동 현황을 볼 때 미사일 제조 작업이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상업용 위성사진 전문업체 플래닛랩스의 촬영사진을 분석한 결과 북한이 평양 북쪽 외곽에 있는 미사일 시설에 두 개의 새로운 건물을 세웠으며, 핵·미사일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있는 징후가 보인다고 보도했다. 새로 들어선 두 건물은 관리용 건물과 박물관처럼 보인다고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 측은 분석했다.

앞서 북한이 핵시설을 은폐하고 농축 우라늄 생산을 늘리고 있다는 미 정보당국의 보고가 현지 언론을 통해 잇따라 보도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지난 25일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북한이 핵분열성 물질을 계속 생산 중”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 같은 움직임을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위에 서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종전선언과 비핵화 이행 순서를 놓고 미국과 대치 중인 상황에서 ICBM 개발 카드까지 노출해 미국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관련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북한 쪽 동향은 한·미 정보기관이 유심히 보고 있지만 상황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김득환 외교부 부대변인은 “정부는 한·미 관계당국 간 긴밀한 공조 아래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재천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도 “군은 한·미 공조 아래 북한 주요 지역에서의 관련 동향과 활동을 면밀히 추적·감시 중”이라고만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5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3개국을 방문한다. 3~4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역내 다자안보협의체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폼페이오 장관과 남·북·미 또는 미·북 외교부 장관의 만남이 성사될지 관심이 쏠린다.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폼페이오 장관은 ‘ARF에서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에 대한 우리의 공유된 책무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