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비핵화 후속협상 교착국면…'先비핵화'-'先체제보장' 대립
미중 '무역전쟁'으로 협상에 더 악영향…北中 '밀착' 가속화
미중 협상모멘텀 살리기 협력 시급…9월 유엔총회前 돌파구 가능성
[정전65주년] G2 패권경쟁에 끼인 '한반도 빅딜'… 돌파구는 언제쯤
지난달 12일 싱가포르를 무대로 한 '세기의 담판'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추진을 공식 천명한 북미 정상의 합의는 아직 '불완전 연소' 상태다.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던 후속 협상은 좀처럼 진도를 내지 못해왔고, 회담이 끝난 지 한 달 보름이 지나 정전협정 65주년을 앞둔 지금도 답보국면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는 핵심쟁점인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선후(先後)관계를 놓고 북미가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결정적이지만, 동북아 역학구도와 연계된 '숨은 변수'도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다는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이른바 'G2(주요 2개국) 갈등'이다.

동북아 패권을 놓고 끊임없는 견제와 경쟁을 이어온 미국과 중국이 이번에는 북핵과 한반도 문제를 놓고 치열한 수(數)싸움을 전개하면서 협상의 진로에 부정적 여파가 드리워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으로서는 후속협상의 최우선 방점을 '완전한 비핵화'에 두고 이를 속도감있게 이행하는데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실어 미국 본토를 공격하는 상황을 자국 안보의 최대 위협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이 대북 제제의 틀을 견고하게 유지하면서 미국이 대북협상에 나서는데 있어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질서의 급격한 '현상변경'을 꺼리는 중국으로서는 북미 협상의 속도를 적절히 제어하면서 한반도 논의를 자신의 주도로 끌고 가려는 계산을 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앞세워 대(對) 중국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는 미국의 역내 행보에 매우 민감해진 상태여서 미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는 상황을 마뜩잖게 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이 최근 들어 안보와 경제 양쪽에서 북한과의 '밀착'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런 상황에서 불거진 미중 '무역전쟁'은 북핵 게임을 한층 더 고난도로 만들어놓고 있다는 관측이다.

미국은 철저히 자국의 이익을 앞세운 '관세폭탄'을 터뜨리며 중국의 '굴복'을 압박하고 있고, 중국은 북한을 레버리지로 활용해 미국에 대항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단 현 국면에서 북미가 후속대화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기본적 쟁점인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선후관계를 둘러싼 대립 탓이다.

미국은 선(先) 비핵화, 후(後) 체제보장을 주문하고 있으나 북한은 선 체제보장, 후 비핵화를 요구하는 구도다.

북미정상회담 후속조치 가운데 이행이 가장 쉬운 것으로 평가돼온 미군 유해송환 협상이 답보상태에 빠진 것 역시 양측이 '첫단추'를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양측의 입장차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지난 6∼7일 평양 방문을 계기로 열린 북미 고위급 회담에서 뚜렷이 드러났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측에 핵프로그램 리스트와 비핵화 시간표, 정상회담 약속사항 이행 등을 요구했으나, 북측은 보장에 대한 신뢰할만한 조치가 선행돼야만 답을 줄 수 있다며 종전선언을 요구하고 버텼다.

결국 폼페이오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과 면담도 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다녀간 뒤 북한은 7일 발표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미국 측이 "조선반도(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에 대하여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이미 합의된 종전선언 문제까지 이러저러한 조건과 구실을 대면서 멀리 뒤로 미루어 놓으려는 입장을 취했다"고 거세게 비판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북한은 이후 진행된 물밑 협상에서 미국 측에 종전선언을 넘어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종전선언·평화협정과 같은 체제보장을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는데에는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최대한의 압박'과 같은 제재와 대북 군사옵션과 같은 강경책을 고수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략적 포석이 깔렸다는 풀이가 나온다.

종전선언은 한반도 정전협정 체제에 종결을 고할 평화협정 체결 전에 이뤄질 수 있는 정치적 선언으로,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우리 정부도 연내 종전선언 추진을 목표로 내걸었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는 의회와 언론을 중심으로 북한이 확실한 비핵화 조치를 이행하기 전에 종전선언이나 제재완화와 같은 '선물'을 줘서는 안된다는 반대기류가 조성됐고,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조기 종전선언에 부정적 입장으로 돌아선 분위기다.

실제로 미 국무부도 지난 13일 종전선언에 대해 "우리는 북한이 비핵화했을 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평화체제 구축에 전념하고 있다"고 밝혀 '선(先) 비핵화-후(後) 정전협정 대체 등 평화체제 구축' 원칙을 재확인했다.

이 같은 북미간 교착국면에서 중국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자리매김하며 외교적 입지를 확장하고 있다는 관측이 미국 외교가에서 나온다.

북한에 밀착하며 비핵화 협상 국면에 조용히 개입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깔려있다.

김 위원장은 북미정상회담 직후인 지난달 19∼20일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것을 비롯해 올들어 북중 정상이 3차례 회동했다.

이어 시 주석은 9월이나 10월께 북한을 답방할 가능성이 있어 당분간 북중 밀착행보는 계속될 전망이다.

공교롭게도 양국 정상의 회동 뒤에는 어김없이 미국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강경해진 데다 지난달 제3차 북중정상회담 이후에는 김 위원장이 방북한 폼페이오 장관을 만나주지 않으면서 중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의 존재감이 새롭게 부상하면서 최근 미국이 '무역전쟁'을 촉발한 것이 북한 비핵화 협상에는 악영항을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 외교가에 나온다.

미국으로선 대북제재가 북한과의 협상력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지렛대'라는 점에서 북한의 최대 후원자인 중국이 국제적 대북제재망에서 이탈한다면 비핵화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쉴라 스미스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미국 동서센터의 한미언론교류 프로그램 참가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실치 않다"며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과 북한 논의가 연결돼있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중국이 한편으로는 미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전면전 양상으로 몰고가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과의 밀착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대미협상에서 '북한 카드'를 십분 활용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으로서도 북한과의 외교적 노력이 실패할 경우 야기될 한반도 정세의 긴장 고조와 불안정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결국 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살리는데 있어 손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북한이 당초 예고한 대로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폐쇄를 시작하고 미국도 종전선언 논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쪽으로 태도를 바꿀 경우 북핵 대화 프로세스의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오는 9월 개최될 예정인 유엔 총회에 김정은 위원장이 정식 초청받는다면 이를 계기로 2차 북미정상회담 또는 남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시나리오가 여전히 거론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