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원장에 김병준 내정…인적청산·노선 재정립 여전히 의문

결국 자유한국당이 한때 노무현정부 핵심인사였던 학자에게 당 재건의 중책을 맡겼다.

6·13 지방선거 참패로 최악의 위기에 내몰린 상황에서 근본 체질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국민적 지지를 회복할 수 없다는 절박감의 표현으로도 읽힌다.

'한국당 집도의'(당 비상대책위원장)에 내정된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가 보수 진영 구원투수로 본격적으로 이름을 올린 것은 탄핵 정국에서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정국의 핵으로 부상하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고육지책으로 노무현정부에서 대통령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총리' 카드를 꺼내 든 거였다.

당시 김 교수가 국무총리직을 끝내 수행하진 못했지만, 총리 내정과 그의 수락 사실 자체는 김 교수가 더는 '노무현'과 '진보'와는 무관한 인물이 되었음을 분명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때부터 김 교수는 보수 인사로 대중들에게 확연하게 각인되어 한국당 위기 상황에서마다 마치 단골메뉴처럼 '찾아지는' 이름이 되었다.

6·13 지방선거 당시에는 극심한 인물난 속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됐고, 지방선거 패배 이후에는 처음부터 가장 유력한 비대위원장 후보로도 거명됐다.

그러나 김 교수가 비대위원장으로 내정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김성태 대표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바른정당 출신 복당파와 친박(친박근혜)계 등 잔류파들이 당내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맞붙으면서 정작 비대위원장 인선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당 의원들은 김 대행의 거취를 놓고 거친 막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한때 '盧의 남자'에 맡겨진 한국당 재건… 곳곳 지뢰 예상
김 교수가 끝내 17일 전국위원회 의결을 거쳐 비대위원장이 된다 해도 그의 앞에는 지난한 과제들이 쌓여있어 앞날은 가시밭길이 될 공산이 크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떠나간 국민적 지지를 되찾아 오는 게 일단 급선무다.

지지를 회복하지 못하고 21대 총선에서 이번 지방선거와 같은 참패를 한다면 한국당은 군소정당으로 전락할 수 있다.

냉전수구로도 인식되는 한국당의 이념적 좌표를 재정립하고, 민생 중심으로 당 노선을 확립해야 하는 이유를 거기서 찾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김 교수가 보수 정체성까지 훼손하며 과도하게 '좌클릭 행보'를 했다가는 당내 강력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여기에는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에서 시작해 '비박(비박근혜)·친박(친박근혜)'를 거쳐 '복당파·잔류파'로 대표되는 당내 뿌리 깊은 계파 갈등도 얽혀 있다.

당 안팎에선 계파 갈등이 극심하다 보니 차라리 갈라서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오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김 교수가 계파 갈등 해소를 명분으로 거칠게 인적청산의 칼날을 들이대려 했다가는 당이 또다시 극심한 내홍으로 빠져들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이는 인적청산이 한국당의 으뜸 과제라는 인식을 가져, 김 교수가 얼마나 큰 권한을 가지고 어느 선에서 인적청산을 실행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때 '盧의 남자'에 맡겨진 한국당 재건… 곳곳 지뢰 예상
김성태 대행은 16일 김 교수를 비대위원장 내정자로 발표하며 악화일로로 치닫던 당내 갈등을 일단 봉합하는 것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의총에서도 극한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고, 김 교수를 비대위원장으로 내정하는 과정 역시 별다른 반발 없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 때문에 17일 전국위원회에서 김 교수를 비대위원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이 무난하게 의결될 수 있을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전국위 총원은 635명이고, 과반은 318명이다.

전국위에서 비대위원장이 선출되면 오는 24일 상임전국위를 열어 비대위원 선임도 마무리할 계획이다.

김성태 대행은 "한국당은 내일 전국위서 비대위원장을 원만하게 선출하고, 당의 혁신과 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