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줬다, 녹음테이프 사본 줬다 결국 美 뜻대로 ICAO에 넘겨 정부는 1992년 11월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9년 전 발생한 대한항공(KAL) 여객기 격추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블랙박스 원본을 먼저 확보하려고 애썼으나, 무위로 돌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29일 외교부가 공개한 1992∼1993년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보면 옐친 대통령은 1992년 9월 10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전화해 방한에 앞서 KAL기 블랙박스 내용을 포함한 사건 관계자료를 공개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하며 그간 행방이 묘연했던 블랙박스의 존재를 알렸다. 러시아 측은 한국과 자료 전달 방식에 관한 협의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9월 28∼30일 모스크바로 특사 파견을 요청했다. 정부는 특사 파견이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며 난색을 보였지만, 러시아는 한국 특사의 대통령 예방 시간까지 10월 14일 오후 3시로 잡아놨다. 이때 정부는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 협상이 진행 중이며, 옐친 대통령의 방한 때까지 미국을 기다리게 할 수 없어 한국에 특사 파견을 요청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실제로 미국 유족 대표가 같은 자료를 받으러 모스크바를 방문할 예정이었으며, 옐친 대통령과는 10월 14일 오후 5시에 만나기로 돼 있었다. 한국 특사의 예방 예정 시간과 2시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당시 주러시아대사는 KAL기 격추 사건의 "일차적인 당사국"인 한국 측에 자료를 먼저 주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미국 측에 넘겨야 한다고 피력했으나, 러시아는 끝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결국 교통부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꾸려 모스크바로 보내면서 "국내 여론"을 고려해 특사가 아니라 정부 대표라고 부르기로 했
1958년 국방장관이 이승만에 서한 "각하도 알다시피 280㎜ 원자포 한국에 반입"1993년 문서 공개 심사에서 북미 핵협상 분위기 등 고려해 '미공개'된 듯 정부가 1993년 주한미군 핵무기 배치 사실이 담긴 1950년대 외교문서를 공개할지를 두고 심사숙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부가 29일 공개한 1993년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보면 당시 진행중이던 북미 핵협상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주한미군 핵무기 배치와 관련된 외교문서의 공개 여부를 두고 정부가 고심했던 흔적이 엿보인다. 정부는 국민 알권리 보장과 외교행정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생산된 지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를 매년 공개하고 있다. 다만 상대국과 외교마찰 가능성이나 현재 진행중인 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면 심의를 거쳐 비공개 처리하기도 한다. 공개된 외교문서를 보면, 외무부는 1993년 10월 9일 국방부 장관에게 협조 공문을 보내 한국군 병력 감축 및 재편성, 미 공군 핵무기 배치 등에 대한 과거 외교문서를 공개해도 될지 의견을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정부가 공개를 고심했던 문건을 보면 국내에 핵무기가 배치됐었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일례로 김정렬 국방장관이 1958년 1월 28일 이승만 대통령 앞으로 보낸 서한을 보면 "각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1958년 1월 22일부터 280㎜ 원자포가 한국에 반입됐다"는 문장이 나온다. 김 장관은 또 같은 해 4월 4일 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문서에서 "발사대 6기와 핵탄두 60발을 갖춘 미 공군 중거리유도탄부대 중 하나가 오산공군기지(K-55)에 배치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당시 주미대사관과 국방부 등은 북한 핵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주한미군 핵무기 배치와 관련된 문서는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