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처벌조항 '합헌' 유지하되 대체복무제 필요성 강조
2001년 본격 공론화 이후 처음…'병역거부 역사' 80년 만의 변화
2004년·2011년에는 모두 '합헌' 결정…일선 법원 판단은 꾸준히 달라져
병역거부 처벌, 3차례 합헌 거쳐 14년 만에 대안 제시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도록 한 병역법을 둘러싼 논란을 놓고 헌법재판소가 첫 소송 이후 14년 만에 대체복무제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우리 사회의 공론 영역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이후 17년 만이고, 근대 사법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약 80년 만의 변화다.

헌법재판소는 28일 입영소집에 불응하면 처벌하도록 한 병역법 제88조 1항에 대해서는 합헌으로 결정하되, 대체복무제를 병역의 종류로 규정하지 않은 같은 법 5조 1항(병역종류조항)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기존의 합헌 판단이 유지된 듯하지만, 사실상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처벌받지 않고 대체복무를 할 길을 열어준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을 둘러싼 논란이 대체복무제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비롯된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도입해 해소하도록 결정했기 때문이다.

특히 처벌조항에 합헌 의견을 낸 4명의 재판관 가운데 강일원·서기석 재판관은 "병역종류를 다룬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선고되면 법원은 대체복무제가 도입되기 전이라도 무죄를 선고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의견을 밝히기까지 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은 건국 이전부터 이뤄졌다.

이 문제를 다뤄 온 김두식 경북대 교수의 연구 등에 따르면 국내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한 최초의 처벌 사례는 1939년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일제의 징집을 거부했다가 체포된 '등대사' 사건이다.

광복과 대한민국 수립, 한국전쟁을 거쳐 1950년대 후반부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법적 규제가 본격화됐다.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1965년 군형법상 항명죄를 인정하는 첫 판결을 내렸고, 1969년에는 병역법 위반 혐의에도 첫 유죄를 인정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인권운동단체 등은 해방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로 처벌받은 사람이 2만명 안팎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많은 한국인이 한두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을 두고 "걔는 종교 때문에 군대 안 가고 감옥 간다더라"는 수군거림을 들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를 '여호와의 증인' 등 특정 종교 신자들의 독특한 문화로 치부했을 뿐, 인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는 오랫동안 눈을 감았다.
병역거부 처벌, 3차례 합헌 거쳐 14년 만에 대안 제시
현행 병역법이 사상·양심·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공론의 장으로 올라온 것은 2001년이다.

특히 연말에 불교 신자이자 평화운동가인 오태양씨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면서 사회적 논쟁에 불이 붙었다.

이 시기를 전후해 법원의 판단도 조금씩 달라졌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중형을 내리기보다는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실형인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는 경향이 굳어졌다.

2002년에는 처음으로 법원에서 병역법 위헌심판을 제청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당시 서울남부지법 이정렬 판사가 최초로 양심적 병역거부에 무죄를 선고하며 파문이 일었다.

다만 같은 해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다시금 양심적 병역거부에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렇게 법원의 판단이 엇갈리기 시작하는 가운데, 헌법재판소는 8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최초의 판단을 내놓았다.

결과는 합헌이었다.

당시 헌재는 "양심의 자유는 중요한 기본권이지만 법질서에 대한 복종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는 아니다"라며 재판관 7(합헌)대 2(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같은 해 10월에도 같은 이유로 합헌 결정을 유지했다.

이 결정 이후에도 갑론을박은 계속됐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권고했다.

국방부는 2007년 '종교적 사유 등에 의한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이듬해 보수정권이 들어선 이후 입장을 바꿔 없던 일이 됐다.
병역거부 처벌, 3차례 합헌 거쳐 14년 만에 대안 제시
헌재는 2010년 11월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해 공개변론을 열어 각계의 의견을 들었다.

하지만 2011년 나온 결정도 7(합헌)대 2(한정위헌) 의견으로 합헌이었다.

당시 헌재는 결정문에서 "양심의 자유가 제한되지만 국가안보와 병역의무라는 중대한 공익을 실현하려는 입법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대체복무제를 허용해도 이러한 공익 달성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판단을 쉽게 내릴 수 없다"고 밝혔다.

헌재가 이런 결정에 변화를 주기까지는 또 7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헌재는 2015년 7월 또 한 차례 여론 수렴을 위한 공개 변론을 연 뒤 다시 3년간 심사숙고했다.

그 사이에도 대법원은 유죄 판단을 유지했지만, 사법부의 인식에는 점차 변화가생겼다.

당장 하급심 법원에서는 잇달아 무죄 판결이 나왔다.

2016년 10월에는 광주지법 형사항소부에서 2심 판결로는 최초로 종교적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듬해 1월에는 청주지법에서 예비군 훈련 거부자에 대해서도 13년 만에 무죄 판결을 내놓았다.

이진성 헌재소장도 지난해 10월 인사청문회서 "양심의 자유와 같은 인간의 본질에 속하는 영역과 관련된 자유는 그 폭을 넓게 보호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측면에서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병역이 아닌 국방의무를 수행하는 대체복무제를 고려해야 한다"며 병역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