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규제혁신안 답답" 이낙연 총리 "국민 눈높이에 안맞아"… 경제팀 초긴장
“회의를 위한 회의는 안 된다.”

27일 청와대에서 열릴 예정이던 규제개혁 점검회의가 전격 취소된 배경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날 회의는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이 규제혁신토론회에서 “규제개혁에 혁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뒤 후속 조치가 논의될 자리여서 주목을 받았다.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와 함께 J노믹스(문 대통령의 경제정책)의 3대 축인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과감한 규제개혁이 필요하다는 게 경제계 요청이었기 때문이다.

◆총리 건의 받고 긴급 회의 소집

문 대통령은 보고 내용이 미흡해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취소해야 한다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건의를 받고 이날 오전 청와대 참모진을 집무실로 긴급 소집해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장하성 정책실장 등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속도가 뒷받침 안 되는 규제혁신은 구호에 불과하다”며 “우선 허용하고 사후에 규제하는 네거티브 방식 도입을 추진하는 것에도 더욱 속도를 내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규제개혁의 속도감을 높일 것을 주문하면서도 “이해 당사자들이 있어 갈등을 풀기 어려운 혁신 과제는 이해 당사자들을 열 번, 스무 번 찾아가서라도 문제를 풀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전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은행 소유 기업의 의결권이 있는 지분을 4%에서 최대 50%까지 늘리는 은산분리 완화와 빅데이터산업 육성을 위해 암호화된 개인정보를 본인 동의 없이 활용하는 방안을 ‘핵심 규제(빅이슈)’로 꼽고 집중 논의할 예정이었다.

회의를 준비한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크게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일각에서는 혁신성장을 담당하도록 한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에게 에둘러 경고한 것이란 추측도 나왔다.

◆밝히지 못할 사정 있나

문 대통령이 이처럼 규제개혁을 강조하면서도 관련 회의를 돌연 취소한 데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준비 부족이라고 해도 정부 부처는 물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4차산업혁명위원회 등 대통령 직속 위원회, 민간기업 등 수백 명의 관계자가 모일 예정이던 회의를 불과 3시간30분 전에 취소하는 게 타당하냐는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회의를 통해 규제개혁 논의의 불씨를 댕기는 건데 회의 자체를 취소한 것은 그런 기회조차 날리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사전 보고 때에는 (이낙연 총리가) 아무 말씀 없으셨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일부에서는 이날 회의 안건인 은산분리 등이 문 대통령의 지지세력인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줄곧 반대해온 문제라는 점을 지적했다. 문 대통령이 ‘이해 당사자와 문제를 풀라’고 언급한 것으로 볼 때 청와대가 막판에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문 대통령 주재 회의에 공식 안건으로 채택한 것만으로도 정부가 추진 의지를 보인 것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총리실이 회의 취소를 공지하는 문자메시지에서 “집중 논의할 예정이었던 빅이슈(핵심규제 2건) 등에 대한 추가협의가 필요하다고 판단돼 국무총리께서 개최 연기를 건의해 결정됐다”고 밝히면서 이 같은 해석에 힘이 실렸다.

조미현/김일규/박신영/이해성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