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2013년 김종필 전 국무총리(JP)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연설을 하면서 중국 고전인 맹자의 글귀를 언급했다.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할 수 없다는 뜻이다. 김 전 총리는 “민주주의와 자유도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경제력이 없으면 있을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글귀는 그의 묘비석에도 새겨진다.

‘군부독재 기획자’라는 비판에도 김 전 총리가 한국 정치사에서 오래도록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었다는 평가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김 전 총리는 “배고픈데 무슨 민주주의가 있고 자유가 있느냐”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끝까지 옹호했다.

김 전 총리는 실제 박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는 역할을 했다. 김 전 총리가 1965년 한국과 일본 정부가 맺은 ‘한일기본조약’ 협상을 맡은 것도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권대사로 나선 그는 오히라 마사요시 외무상을 상대로 담판을 벌여 일본으로부터 8억달러 규모 식민지 청구권 자금을 받아냈다. 당시 일본의 외환보유액이 14억달러였던 점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하지만 국내에 반일 감정이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상황에서 김 전 총리는 ‘제2의 이완용’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김 전 총리는 훗날 “조국 근대화의 밑천을 장만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매국노 소리를 들어도 누군가 해야 할 일이었다”고 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