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청이 20일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주 52시간 근무제 처벌 유예 요청을 하루 만에 수용한 것을 두고 문재인 정부 2기(올 6월13일~2020년 4월 총선) 경제 정책 기조에 변화를 예고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소득주도성장 기조는 유지하되 재계와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는 실용적 경제정책으로의 선회를 알리는 ‘신호탄’이란 해석도 있다.

◆소득주도성장 실패 일부 인정

이날 고위 당·정·청 협의회는 지난 1년간의 경제정책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고위 당·정·청 협의회 시작발언에서 경총이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6개월 계도기간을 달라고 요청한 데 대해 “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위한 충정의 제안”이라며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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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를 일부 인정했다는 점도 눈에 띄는 변화로 읽힌다. 청와대와 정부는 그동안 각종 경제지표 악화에 대해 “일시적 요인이거나 인과 관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며 “좀 더 지켜봐달라”고 해명해왔다. 하지만 이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1년 동안 성과를 내지 못한 부분도 없지 않고, 정부 노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한 곳도 많았다”며 “소상공인, 자영업자, 노인층, 저소득층 일용직과 단시간 노동자, 그리고 실업 상태에 있는 국민을 위한 정책을 보완해 시행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정책의 당위성만을 앞세우기보다 산업 현장과 정책 수요자의 목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재인 2기 민생 올인

고위 당·정·청 협의회는 문재인 정부 2기 정책의 방점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 성과를 위한 빠른 정책 추진’에 방점을 두고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키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선거가 없는 1년10개월 동안 단기 처방, 땜질식 공약보다는 성과를 낼 수 있는 경제정책을 펴겠다”며 “속도를 내되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속도’ ‘성과’ ‘체감’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정책과 관련해 내각에 주문한 3대 핵심 키워드다.

실용 노선을 택한 문재인 정부 2기의 경제정책 밑그림도 나왔다. △확장적 재정정책 △소득 하위 20%(1분위) 일자리와 소득 지원 △혁신성장 등 세 가지 축이 핵심이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내년 5.7%로 예정된 중기재정운용계획상 재정지출 증가율을 높이겠다고 보고했다. 늘어난 재정은 영세자영업자 카드 수수료 인하와 창업법인 12만 개 지원, 고령층 노인 일자리 확대 등에 쓰인다.

민주당은 신산업·신기술 분야 사업에 일정 기간 규제 적용을 면제해 주는 내용의 규제 혁신 5개 법안(규제 샌드박스 5법)을 조기 입법화할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뼈아픈 대목’이라고 지적한 소득 하위층인 1분위의 소득 감소와 관련해선 소득 개선에 초점을 맞춘 ‘저소득 맞춤형 일자리 및 소득 개선 대책’도 다음달 추가 발표한다.

청와대와 정부가 정책을 만들고 당은 들러리를 섰던 기존의 고위 당·정·청 협의회 방식도 크게 변할 전망이다. 국회가 정책을 만들어 청와대와 정부를 부르고, 기존 정책에 대해선 지역구와 약 170만 당원들의 민심을 전달하는 창구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소득주도성장이 곧 최저임금 인상이란 오해가 나오도록 일부 부처가 홍보를 제대로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며 당의 주도적 역할을 예고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