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시장 상인, BBC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우리 장사꾼들 같다"…"남한·미국과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고들 한다"
전직 서방정보요원 "현 북한은 경제공간 커지나 정치억압은 불변…70년대 후반 남한 유사"


`지금 북한의 사회상은 정치 체제는 변함 없이 억압적이지만 사람들의 경제 활동 공간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의 남한과 거의 같은 상황이다'
"김정은, 시장 내버려둬 긍정평가에도 돈 빠는 흡혈귀 욕먹어"
언론 보도에 등장할 때도 구체적인 기관과 직책 없이 북한을 포함해 "아시아에서 수십 년간 활동한 서방 정보 요원"으로만 소개되는 제임스 처치가 '북한에 관해 알게 되면 가장 놀라운 일'에 관한 질문에 이런 요지로 설명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 업체 스트랫포의 팟캐스트를 통해서다.

제임스 처치도 본명이 아니라 자신의 대북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쓴 북한내 권력투쟁에 관한 추리소설의 필명이다.

그는 "북한 사회를 몇 꺼풀 벗기고 들어가면 북한 사회도 결국 여러 면에서 한국 사회(a Korea society)다…북한 사람들도 여러 면에서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의 남한 사람들처럼 보고 생각한다.

거기(북한)에도 지금 어떤 에너지가 있고, 얼마의 성장도 이뤄지고 있다.

사람들은 경제체제에 자신들이 활동할 공간이 생기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비록 정치체제는 여전히 꽉 막힌 채 억압적이지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기억할 게, 남한도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은 매우 유사했다.

사람들이 활동할 경제적 공간은 점점 커져 갔고 사람들도 그것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꽤 잘 활동했다.

그러나 정치적 공간은 매우 강압적이어서 선을 넘으면 박살났다"고 지적하고 "(남한) 사람들은 그에 적응해 오랫동안 그 선 안에서 살다가 마침내 더 이상 못 참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처치가 말하는 북한 사람들의 경제 활동 공간의 성장, 즉 북한 사회의 시장화는 이제 모든 북한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대목이다.

이미, 지난 2014년 입국한 고위층 탈북자 이 모 씨는 당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남한처럼 돈을 벌려는 기업이나 개인들이 투자하고 시장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이 보편화해 있다"며 "북한은 무늬만 사회주의일 뿐 수요와 공급, 이윤의 확보라는 시장 경제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 방송 BBC가 북한에 거주하는 장사꾼 '순희'와 군인 '철호'(모두 가명)씨와의 간접 인터뷰를 통해 30일 전한 북한 사회상도 처치가 말한 북한의 현 사회상을 뒷받침한다.

이 방송이 서울에서 북한 소식을 전하는 데일리 엔케이(Daily NK)의 북한 내부 조직망의 도움을 받아 접촉한 순희 씨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우리가 시장에서 뭘 하든, 별로 단속하지 않고" 내버려 두기 때문에 그를 긍정적으로 평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순희 씨는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김정은이 장사꾼 같다고 욕한다.

그 애(the little man)가 꼭 우리 장사꾼들처럼 행동하면서 우리 돈을 가져간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온갖 머리를 써서 흡혈귀처럼 돈을 빨아간다는 거다"라고 말했다고 BBC는 전했다.

국가 재정 충당을 위한 과도한 세금 징수 등으로 인해 널리 퍼진 불만의 표시다.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북한 내부 주민 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016년 발표한 '북한 서민의 일상' 관련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들은 북한의 비공식 시장인 '장마당' 통제, 간부 뇌물, 강압적인 노력 동원, 세금 외 준조세 부담, 적은 노임, 배급 중단 등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북한 시장은 또한 각종 소문과 정보의 온상이기도 하다.

"내가 시장에서 듣기로, 미국 대통령이 온다더라"고 순희 씨는 말했다고 BBC는 전했다.

"사람들이 (북미 정상) 회담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모두 미국을 싫어한다.

우리가 못 사는 이유가 미국이 우리를 (남한과) 갈라놓았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말한다"고 순희 씨는 말했지만, "그러나 최근엔 좀 변하고 있다.

사람들 말로는 우리가 남한과 잘 지내야 한다고 한다.

최근엔 우리 모두가 더 잘 살려면 미국과도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고 말들을 한다"고 덧붙였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비롯해 한반도 정세에 관한 얘기들이 일반 주민들에게도 돌고 있음을 보여준다.

BBC는 북한 정권의 대 서방 화해 기류를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했다.

"죽을 때까지 남 부러움 없이 병 들지 않고 잘 사는 게" 인생의 바람이라는 군인 철호 씨는 부모와 자식들도 그렇게 살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는 "일상 생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말을 했다가 보위부에 끌려가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지는데, 최근엔 내가 사는 곳에선 그런 일이 없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순희 씨는 강제수용소에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사회가 지탱하고 있다"며 "정부에 체포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그렇게 보위부에 끌려가는 사람들 중 일부는 보위부원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조작한"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철호 씨는 말했다.

"중국에 갈 계획이라고 말하도록 유도해 놓고 신고한다"는 것이다.

자신도 밤에 중국에서 밀수된 USB 저장장치나 복제 DVD를 통해 남한 드라마와 외국 영화를 본다는 순희 씨는 단속당하면 거액의 뇌물을 줘야 하는데도 사람들이 몰래 보는 것은 "남한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과 국경에서 먼 순희 씨 지역에선 탈북이 "흔한 일이 아니"지만 "이웃집이 사라지고 나면, 우리는 그냥 '아랫 동네(남한)로 갔대'라고 말한다"고 순희 씨는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