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행정부가 정찰총국과 함께 제재…일시적 제재면제 허용
워싱턴보다는 정치적 부담 적어…"북미협상, 중요포인트 도달"
김영철, 워싱턴 아닌 뉴욕으로 오는 까닭은… 美 독자제재 대상
북미정상회담 조율을 위해 미국 뉴욕 방문길에 오른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미국 방문은 지난 2000년 조명록 당시 북한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미국땅을 밟은 이후 18년 만의 북한 최고위급 인사 방문이다.

특히 김 부위원장은 미국의 제재 대상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김 부위원장의 미국행은 미국이 사실상 일시적 제재면제를 허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르면 미국으로의 여행이 제한되고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는데 김 부위원장에 대해 일시적으로 미국 여행을 허용한 셈이다.

방미길에 오른 김 부위원장은 29일 베이징에 도착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김 부위원장이 지금 뉴욕으로 향하고 있다면서 그의 '뉴욕행'을 공식 확인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성명에서 김 부위원장이 금주 중 뉴욕을 방문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회담한다고 밝혔다.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양측이 판문점과 싱가포르에 이어 뉴욕에서까지 '3각 채널'을 가동하며 밀도 높은 협상에 들어간 것이다.

다만 김 부위원장은 현지시간으로 30일 오후 베이징에서 뉴욕을 향해 출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제재 대상인 김 부위원장의 방미를 허용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취소 발표로 혼란에 빠졌던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양측의 강한 의지를 확인해주는 하나의 징표로 풀이된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해제를 강력히 원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김 부위원장의 방미가 비록 일시적 제재 면제이지만 제재 완화·해제를 향한 '시험적 성격'의 의미를 담았을 수도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김 부위원장의 방미에 대해 "북미정상회담으로 이르는 가장 중요한 협상 트랙의 시작"이라면서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협상이 중요한 포인트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 부위원장은 미국과 한국의 독자제재를 받고 있고, 다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제재 대상에서는 빠져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0년 8월 천안함 폭침 사건 주도 의혹을 받았던 북한 정찰총국과 당시 수장이었던 김 부위원장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당시 명확한 제재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각종 도발과 불법 활동, 사이버 공격 등을 일삼았던 정찰총국과 그 수장에 대한 제재로 풀이됐다.

우리 정부도 미국에 이어 지난 2016년 3월 대남도발의 배후로 지목돼온 김 부위원장에 대해 제재를 단행했다.

김 부위원장의 행선지가 수도인 워싱턴DC가 아닌 뉴욕으로 정해진 것도 주목된다.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와 미국 국무부 사이의 중요한 소통창구 역할을 해온 뉴욕채널이 있는 뉴욕에서 북미 간 고위급 접촉이 열리게 되는 셈이다.

비록 북미가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막바지 조율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미국으로서는 정치적 상징성이 큰 워싱턴DC보다는 뉴욕이 부담이 덜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뉴욕에는 유엔주재 북한대표부가 상주하고 있어 북한으로서는 미국 측과의 회담을 위한 편의성 측면에서도 더 효율적일 수 있다.

특히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 관계자들은 뉴욕 밖으로의 여행이 제한된다.

한 외교관은 NYT에 "김 부위원장은 아마 워싱턴보다는 비자를 받기가 더 용이한, 자국의 유엔대표부가 있는 뉴욕으로 향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2014년 이후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유엔총회 기간에 외무상을 뉴욕에 파견해왔으며, 지난해에는 리용호 외무상이 유엔총회에 참석해 연설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