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 2차 정상회담

'깜짝 회담' 성사 막전막후

25일 오후 北 김영철이 서훈 국정원장에게 연락
26일 오전까지 실무적 준비

극소수 인원·경호 차량으로 오후 3시 극비리 판문점行
2시간여 걸쳐 비공개 회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고 헤어지기 전 포옹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고 헤어지기 전 포옹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깜짝 정상회담’까지 남·북·미 3국은 그 어느 때보다 긴박한 2박3일을 보냈다. 6·12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격적인 ‘회담 취소’ 카드를 꺼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베팅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김정은의 ‘유화 손짓’, ‘오작교’를 자청한 문 대통령의 ‘통일각 비밀 방문’까지 모두 40시간 만에 이뤄졌다.

‘통일각 회담’ 배경은

남북한 정상의 예기치 못한 재상봉은 문 대통령을 향한 김정은의 다급한 ‘SOS’가 발단이었다. 문 대통령은 2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김정은과의 갑작스러운 비밀 회동 배경에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그제(25일) 오후 일체의 형식 없이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해 와 흔쾌히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얼어붙은 미·북 관계를 조율하는 ‘중재자’로 나선 문 대통령은 김정은이 다급하게 내민 손을 잡았다. 문 대통령은 “4·27 판문점 선언 후속 이행과 6·12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과정에서 약간의 어려운 사정들이 있었다”며 “그런 사정들을 잘 불식시키고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이뤄내는 것, 4·27 판문점 선언의 신속한 이행을 함께 해나가는 게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 봤다”고 덧붙였다.

사상 첫 ‘통일각 회담’은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조율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서훈-김영철의 접촉 이후 외교안보 관련 장관들이 협의한 뒤 대통령에게 (2차 정상회담을) 건의했다”며 “문 대통령이 승낙한 뒤 그제 밤부터 26일 오전까지 실무적 준비를 해 오후에 전격 회담이 개최됐다”고 말했다.
트럼프 뒤집기에 허 찔린 김정은… 문 대통령에 "회담하자" SOS

롤러코스터 같은 반전

‘핫라인 통화’ 대신 한 달 만에 두 정상이 재회한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기류가 최근 급변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실무진이 협의하는 것보다 직접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서 전격 회담이 이뤄졌다”고 밝혔지만 이 같은 요구가 북측에서 먼저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동엽 경남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번 회담은 형식과 성사 과정 모두 현재 남과 북이 처한 입장과 역할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25일 재가동된 서 원장과 김영철의 물밑 접촉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지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초강수 베팅에 당황한 북측이 고개를 숙이고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담화를 통해 “언제든지 미국과 마주 앉을 용의가 있다”고 밝힌 직후 우리 측에도 손을 내민 셈이다.

앞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24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된 담화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공개 서한을 통해 다음달 12일로 예정된 미·북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가뜩이나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미국 내에 팽배한 상황에서 북측의 과격한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취소 통보에 북한이 예상외로 부드럽게 반응하면서 미·북 정상회담은 다시 추진되는 쪽으로 유턴했다. 불과 3일 만에 회담 취소부터 2차 남북 정상회담까지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 입구에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영접을 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 입구에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영접을 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존재감 커지는 ‘서훈-김영철’ 라인

다음달 12일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은 보름간 예상을 뛰어넘는 ‘역대급 반전’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북·미 정상회담의 향방은 결국 김정은에게 달려 있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점쟁이도 예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이어질 경우 2차 정상회담을 이끈 ‘서훈-김영철’ 라인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란 분석이다. 두 사람은 국정원과 북측 통전부에 설치된 핫라인을 통해 접촉하며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와 북측 고위급대표단 및 남측 특별사절 대표단의 방문 등을 성사시켰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에 남측 취재단의 방문을 허용하지 않고 있을 때도 두 사람 간의 라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원장이 국제 여론과 남한 사회의 정서를 거론하며 북측에 방문 수용을 요구했고, 김영철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전격적으로 남측 취재진의 방북이 성사됐다는 후문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 역시 이번 2차 정상회담 과정에 대해 “(북측과) 여러 소통 경로로 얘기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서훈 원장과 김영철 부위원장 간의 소통 경로”라고 언급했다. 서 원장은 특히 중앙정보국(CIA) 국장이었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국정원-CIA-통전부의 삼각채널을 구축해 현재의 미·북 관계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북 정상회담 성과에 따라 남·북·미 3자 대화채널이 급부상할 경우 이들의 역할 역시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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