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본부 지침과 반대파 방해에서 자유로와

내달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인 북미 회담이 정상 간 회담이 아니라 북핵 6자회담 틀 내의 북미 양자회담처럼 미국에서 국무부 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가 대표로 참석하는 회담이라면 그 회담은 어떻게 진행될까?
대북 대화 반대파 견제에 시달렸던 힐의 회고록을 봤더니
북한 대표는 엄격한 본부의 지침에서 한 치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짐작할 수 있지만, 미국의 협상 대표도 세세한 점까지 지침을 받는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북한은 워낙 비밀스럽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으나, 열린 사회인 미국의 경우엔 다행히 언론 보도와 10년, 20년 후 회담 참여자의 회고록을 통해 관련 회담의 막후를 비교적 자세히 알 수 있다.

2005년 미국 측 대표로 9.19 공동성명을 만들어낸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차관보는 회고록(2015년 한국판. 옮긴이 이미숙)에서 "협상을 개시하기 앞서 전문으로 지침이 전달됐다"며 "북한의 비핵화를 이뤄내는 데 어떤 여지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지침의 핵심이었다"고 기술했다.

"북한 사람들이 포함된 어떤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건배하지 말라고 명시돼 있었다"고 힐은 설명했다.

그는 "내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조지 부시 대통령의 지지를 받는 것만큼이나, 부시 행정부내 보수주의자들은 회담 진전을 불편해했고, 이런 과정을 북한에 어떤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회담이 진행되는 단계마다 협상팀에 대한 상당한 불신이 제기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북한 협상단이 미국 협상단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을 때조차 힐은 워싱턴의 보수주의자들의 눈치를 보며 2주 동안 미루다가 응할 정도였다.

힐은 당시 협상팀이 워싱턴에 보내는 보고서를 모두 사전에 일람했다.

그러나 "나는 공식적으로 보내는 보고서만 봤을 뿐 진짜 중요한 메시지는 이메일로 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고 토로했다.

협상팀의 누군가가 자신이 모르게 다른 수단을 통해 다른 내용의 보고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가졌던 이유는 다음의 말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

북한과 협상을 벌인 후 그때마다 "내가 (라이스 장관에게) 직접 전화해야 했던 것은 라이스 장관이 우리 팀 일원에게서 내가 북한과 협의하며 지침을 위반했다고 불만을 표하는 전화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협의는 북한과도 직접 대화해야 한다는 지침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었지만, 많은 이들은 그런 북미 접촉에 적대감을 느끼고 있었다"
힐은 부시 행정부 2기 출범과 더불어 자신이 동아태 차관보로 내정된 것을 라이스 장관으로부터 통보받았을 무렵에 대한 회고에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정책은 출구 전략 모색 쪽으로 전환했는데, "그들(네오콘. 신보수주의자들)은 북한을 자신들의 최후 투쟁 상대로 만들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대북 대화) 반대파들은 (힐의 전임자인) 제임스 켈리가 북한과 협상할 때 너무 부드러운 태도를 취한다고 비판하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힐은 대북 협상 대목 곳곳에서 이에 반대하는 네오콘의 견제와 방해에 대해 언급했다.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장관의 지침에 따라 대북 협상 대표로 나섰지만, 행정부 내 대북 강경파의 방해와 반대가 그만큼 거세고 끈질겼다는 뜻이다.

힐은 연방수사국(FBI) 등이 북한의 위폐, 마약 등 불법행동을 추적, 차단하는 활동을 하는 것을 "재무부와 국무부에서 일하는 언론 속성에 밝은 비전문적 정무직 인사들"이 이른바 '언론 플레이'에 이용한 사례들도 지적했다.

존 볼턴 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측근이던 스튜어트 레비 당시 재무부 차관 주도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 2천500만 달러를 동결한 것에 대해 힐은 당시 진행 중이던 9.19 공동성명 협상과 관련, "협상력을 높여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협상을 전체적으로 이탈시키려는 의도가 강했다"고 회고했다.

힐은 협상 진전을 위해 이 동결 조치의 해제 필요성을 라이스 장관에게 건의하면서 "나도 대북 압박을 지지하고, 나보다 더 북한을 싫어하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대북 유화론자라는 오해를 피하려는 뜻이다.

힐이 지적한 `그들'은 "적들과 협상하는 것을 나약함의 표현이라고 규정하고,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며 "더 나아가 독재자는 절대 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론에 입각해 그들과 협상에서 진전을 기대하는 것은 그저 환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편 네오콘과 초강경 보수주의자들을 가리킨다.

당시 딕 체니 부통령을 필두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이 포진했으며, "공개적으로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너무 유화적이라고 비판"한 볼턴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도 물론 거기에 포함됐다.

"이들은 (부시)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풀려고 중국이나 다른 나라와 협력하는 데 주력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대통령 등 뒤에서 음모를 획책했다"고 힐은 회고했다.

특히 체니 부통령에 대해선 "이라크를 침공하면 거리에 장미꽃 잎이 뿌려질 것이라고 오판한 사람"이면서도 잘못을 인정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대통령의 시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자기 외교 정책을 추진"한 인물로 묘사했다.

힐이 회고록에서 묘사한 대북 협상의 미국 측 막후 움직임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시작하기 앞서 기자들과 문답 시간에 "지금까지 북미 간 여러 번 합의가 있었지만, 정상들 간 합의가 도모되는 것은 이번이 사상 처음"이라며 "더구나 그 정상회담을 이끄는 분이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상기한 것은 단순히 트럼프 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한 상찬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미국 내 많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며 이같이 말했다.

협상의 유연성 발휘를 어렵게 만드는 엄격한 지침에 얽매이거나 등 뒤의 저격수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대통령이 협상 대표로 직접 나선 데 따른 기대감의 표시인 것이다.

'리비아 모델'론으로 북한의 반발을 산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대표적인 대북 협상 회의론자에 속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