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김동철(2015년 10월 체포), 김상덕(2017년 4월 체포), 김학송(2017년 5월 체포).
왼쪽부터 김동철(2015년 10월 체포), 김상덕(2017년 4월 체포), 김학송(2017년 5월 체포).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사진)이 40여 일 만에 북한을 다시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난 뒤 북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세 명과 함께 귀환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평양 이벤트’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북·미 정상회담 개최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북·중 ‘다롄 회동’ 후 급파된 폼페이오

폼페이오, 평양서 마지막 조율 끝낸 듯… "北·美 정상회담 당일치기로"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은 지난 부활절 주말(3월31일~4월1일) 이후 두 번째다. 그가 급히 평양을 찾은 건 이번에도 중국 때문이었다. 1차 방북 땐 김정은이 지난 3월25~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베이징에서 만난 뒤였고, 이번에는 김정은과 시 주석이 다롄에서 회동한 직후였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8일 전용기 안에서 북한 측이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를 요구한 것에 대해 “우리는 잘게 세분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또 “우리는 과거 걸었던 길을 답습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제재를 완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목표를 재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 2일 국무장관 취임식에서 쓴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PVID)’란 용어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끌어내기 위해 회담 조건의 문턱을 약간 낮춘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폼페이오 장관은 9일 평양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오찬을 함께하며 북·미 회담 의제와 시기, 장소에 대한 최종 조율에 나섰다. 김영철은 폼페이오 장관에게 “미국이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는 데 매우 커다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김영철을 ‘훌륭한 파트너’라고 칭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적국이었다”며 “이제는 갈등을 해결하고, 세계를 향한 위협을 치워 버리는 한편 북한 사람들이 받을 모든 기회를 누리도록 함께 협력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이 김정은과 회동했다는 사실을 전해 북·미 정상회담의 걸림돌이 해소됐음을 시사했다. 전문가들도 폼페이오 장관이 이번 방북을 통해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 등 회담 의제의 미세 조정까지 거의 마쳤을 것으로 예상했다.

트럼프 “北의 긍정적 제스처 환영”

폼페이오 장관은 귀국길에 일본 요코타 미군기지에 착륙한 뒤 기자들에게 “훌륭하고도 긴 대화를 김정은과 나눴고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고 말했다. 또 정상회담과 관련한 세부 내용이 ‘금명간(in the next handful of days)’ 발표될 것”이라며 “회담은 당일치기로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과 만나 생산적인 대화를 했으며, 세 명의 미국인을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무척 기쁘다”고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미국 국적 북한 억류자들을 전원 귀환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미국 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한 호감이 높아지고 북·미 회담 진행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백악관도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억류 미국인 석방에 대해 “선의의 긍정적 제스처로 환영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트럼프) 대통령 축하합니다! 당신의 강한 리더십과 우리의 미국 제일주의 정책이 국내와 세계 무대에서 상금을 받았습니다. 이는 평화를 향한 또 하나의 위대한 걸음입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시간으로 10일 오후 3시(현지시간 9일 오전 2시) 폼페이오 장관 일행을 워싱턴DC 앤드루스 공군기지로 직접 마중 나가기로 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이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미국과 중국 사이를 잘 오갔다”며 “북한과 미국 모두 만족할 만한 회담 조건을 교환한 듯하다”고 말했다.

다만 성공적인 회담을 위한 조건들을 확정하기에 앞서 북·미 양측은 수일간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폼페이오는 김정은과의 90분간 면담을 포함해 13시간 동안 북한에 머물렀다.

김채연/이미아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