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靑 국가안보실장(좌)·존 볼턴 美 국가안보좌관(우)
정의용 靑 국가안보실장(좌)·존 볼턴 美 국가안보좌관(우)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4일 비밀리에 미국을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 실장의 방미는 지난달 9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취임한 이후 벌써 세 번째다.

정 실장의 방미는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의 비핵화 담판과 관련해 세부 의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후보지로 판문점을 지목하면서 장소와 개최 시기 등 의제를 조율하기 위한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미·북 정상회담 개최 장소 중 하나로 판문점을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한 데 이어 이달 1일에는 “구체적인 회담 장소와 날짜가 며칠 안으로 발표될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정 실장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논의하자는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요청으로 비공개 방미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미국 요청에 따라 정 실장의 방미를 사전에 공개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청와대는 다만 정 실장의 방미가 비핵화 협상을 앞선 의제의 사전 조율 차원이지, 북·미 정상회담 장소 문제 등의 협의 차원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남북한 정상회담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75분 동안 통화했지만, 미국 측이 세부 논의를 위해 정 실장의 직접 대면을 요청했다는 설명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장소 문제는 ‘스몰딜(작은 쟁점)’인 것 같다”며 “북·미 회담이 북핵 해결을 위한 본격적인 라운드라는 것을 고려하면 개인적으로는 좀 더 ‘빅딜’에 대한 얘기를 나누지 않겠나 추정한다”고 말했다.

북한과 미국이 사전접촉을 통해 비핵화에 대한 이견을 상당 부분 좁힌 것으로 관측되지만 방법론을 놓고 양측의 간극이 여전해 정 실장의 중재가 필요했을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북·미가 내세우는 비핵화 방법론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실장은 김 위원장 의중을 미국 측에 전달하면서 북·미 간 협상공간을 넓힐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비핵화 방법론이건 북·미 정상회담 장소 문제가 됐건 한국의 의견을 비중 있게 반영하겠다는 미국 측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했다.

정 실장은 이번 방미에서 북·미 정상회담의 시기가 앞당겨진 데다 판문점 개최 가능성 등으로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진 한·미 정상회담 일정도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