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군사·적십자 회담 예상…북미정상회담이 관건
남북 '전방위' 대화·접촉 줄이을 듯… 제재 회피가 과제
남북 정상이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하 판문점 선언)에 합의하면서 앞으로 합의 세부 사항 이행을 위한 후속 협의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남북은 판문점 선언에서 "고위급 회담을 비롯한 각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빠른 시일 안에 개최하여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문제들을 실천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리마 속도전'을 남북의 통일 속도로 삼자고 말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를 돌아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라고 화답한 만큼 앞으로 남북은 관계 발전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우선 남북 당국은 선언에서 합의된 고위급회담 개최를 비교적 조속한 시일에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이번 남북정상회담 개최 준비를 위한 고위급회담 카운터파트였던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다시 회담장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후에도 합의 이행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체로 남측 통일부 장관과 북측 내각 책임참사를 각각 단장으로 하는 남북 장관급회담이 열렸다.

이후 남북 장관급회담은 2007년까지 총 21차례에 걸쳐 꾸준히 진행되며 남북 당국 대화의 중심축 역할을 했다.

이들 자리에서는 주로 개성공단 연락사무소 설치나 민간교류의 활성화를 지원하는 방안 등을 논의할 전망이다.

대북제재가 유효한 상황에서 당장 남북간 경제협력문제를 논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와 함께 국방 분야에서도 2007년 2차 회담을 마지막으로 열리지 않았던 남북 국방장관 회담이 이번 합의문에 명시된 만큼 11년 만에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5월에는 남북간 장성급 군사회담도 열어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한 조치를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 정상은 이번 회담 수행원으로 송영무 국방장관과 정경두 합참 의장, 박영식 인민무력상과 리명수 총참모장을 포함해 향후 남북 간 군사 논의 프레임을 갖췄다.

남북 군사회담에서는 전쟁을 끝내고 충돌을 막기 위한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분야에서 성과를 낼 경우, '5월 또는 6월 초'로 예상되는 북미정상회담으로 긍정적인 분위기를 이어가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 '전방위' 대화·접촉 줄이을 듯… 제재 회피가 과제
이산가족 상봉이나 각종 문화·체육행사를 위한 접촉도 이어질 전망이다.

남북은 '판문점 선언'에서 "민족적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계각층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을 활성화하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시기적으로는 먼저 6·15 공동선언을 기념하는 민족공동행사가 대대적으로 펼쳐질 전망이다.

앞선 정부 시절 남북의 문화·종교·시민단체 인사들이 서울·평양 등을 상호 오가며 대규모 문화 행사를 하는 방안이 추진됐으나,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서 수차례 무산됐다.

이어 8·15 계기 이산가족·친척 상봉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이 상봉 1~2개월 전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

남북적십자회담은 2010년이 마지막으로, 2015년에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남북적십자 '실무접촉'이 열린 바 있다.

또 비슷한 시기인 8월 18∼9월 2일 열리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공동참가를 위한 남북 체육회담 등도 열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북한에서 정권수립 70주년(9월 9일)을 맞아 남쪽 인사들을 광범위하게 초청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만약 이와 같은 남북 협력 가속화 분위기 속에 선언에 명시된 대로 올해 가을 문 대통령이 평양을 찾아 정상회담을 하게 되면, 올해 점차 싹을 틔울 각 분야 교류의 에너지를 반석 위에 올릴 수 있으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북한의 거듭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겹겹이 쌓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여전히 지속하고 있는 만큼 관계 개선에 무작정 속도를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도 있다.

북핵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면서 촘촘한 제재에 숨통이 트이지 않으면 대북 교류의 본격적 재개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의 1차 핵실험에 대응한 2006년 1718호를 시작으로 유엔 제재 결의만 10개가 쌓여 있고, 미국도 사실상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제재) 성격이 있는 제재로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연초부터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참가까지 다양한 남북 공동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유엔 제재 및 미국의 독자제재를 위반하지 않기 위해 외교 당국은 매일같이 미국 등 국제사회와 세부 협의를 이어가야만 했었다.

특히 현재 제재 체제가 북한으로의 외화 유입이나 각종 서비스 제공, 합작사업 추진 등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만큼 대북 투자를 비롯한 경제분야 협력은 더욱 더딜 수밖에 없으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열리고 북미간 유화 분위기가 심화될 때까지는 국제사회도 환영할 긴장완화 맥락에 있는 군사 분야,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인도주의 분야, 경제적 지원과 결부되지 않는 문화체육 분야를 중심으로 폭넓지만 신중한 접근이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은 "북미정상회담 전까지는 합의된 사안에 대한 상호 협의는 가능하겠지만, 구체적 이행은 다소 어려울 것"이라며 "북미정상회담 후 제재 완화 여건이 조성되면 제재가 해제되지 않더라도 유연한 해석을 통해 (위반 여지가 있는) 각각의 사안들도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북 '전방위' 대화·접촉 줄이을 듯… 제재 회피가 과제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