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 남북 정상회담장에서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서훈 국가정보원장, 문 대통령,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김정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판문점=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 남북 정상회담장에서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서훈 국가정보원장, 문 대통령,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김정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판문점=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한반도 비핵화’를 두고 벌인 담판은 사실상 100분 만에 끝이 났다. 두 정상은 오전 10시15분부터 11시55분까지 이어진 정상회담 결과를 바탕으로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을 내놨다. 이번 합의의 핵심인 ‘완전한 비핵화’에 대해 문 대통령은 ‘선물’이라고 했고, 김정은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했다.30년간 이어진 한반도 핵 위협을 끝낼 첫걸음을 두 정상이 내디뎠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김정은 ‘통 큰 합의’

문 대통령 "세계에 큰 선물 될 것"… 김정은 "이건 빙산의 일각"
김정은은 회담 시작부터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나타냈다. 김정은은 “지난 시기처럼 원점에 돌아가거나 이행하지 못하는 결과보다 앞으로 미래를 내다보면서 지향성 있게 손잡고 걸어나가는 계기가 되자”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대화도 통 크게 합의에 이르러서 온 민족과 평화를 바라는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큰 선물을 만들어주자”고 답했다.

김정은은 비공개 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구상을 문 대통령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제안도 전격 수용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자고 제안했고, 김정은은 이를 개성에 두는 데 동의했다. 남북은 또 오는 8월15일 이산가족 및 친척 상봉 행사를 열고, 8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도 공동 출전하기로 합의했다. 김정은은 문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대했다. 문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올가을 방북하겠다고 화답했다.

두 정상은 만난 지 8시간40분 만에 판문점 선언을 공동 발표했다. 선언문은 남북 정상이 단둘이 도보다리에서 산책하는 동안 양측 실무진이 완성했다. 문 대통령은 회담이 끝난 뒤 “좋은 논의를 많이 이뤄 남북 국민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아주 선물이 될 것 같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김정은은 “많이 기대하신 분들에게 이제 시작이자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겠지만 (이번 합의로) 조금이나마 기대를 만족드렸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비핵화의 기틀 마련

문 대통령과 김정은의 이번 합의로 한반도 비핵화의 기틀이 마련됐다는 분석이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직접 완전한 비핵화를 공식 선언한 것 자체가 전례없는 일이다. 북한은 과거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원칙만 밝혔을 뿐 핵 포기를 선언한 적은 없다.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비핵화는 선대 유훈”이라면서도 핵 개발을 고도화해왔다. 김정은 역시 지난해 9월9일 6차 핵실험을 강행하는 등 최근까지 핵무력 완성에 집중했다. 김정은이 이날 합의에 대해 ‘시작이자 빙산의 일각’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볼 때 향후 핵 폐기에 대한 추가적 조치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이 이처럼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경제 개발 의지가 주효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은 물론 중국까지 대북 제재에 동참하면서 북한은 회복 불능의 경제 상황에 빠졌다. 김정은이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 총력 집중이 새로운 전략적 노선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북한의 비핵화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상당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북한이 보유한 핵 무기와 핵 물질 규모, 핵 시설 등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이 필요하다. 사찰 기간만 약 1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찰 이후 핵 폐기 과정도 수년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비핵화를 위한 북·미 간 협상은 결코 순탄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협상 과정에서 김정은이 핵 포기 의지를 꺾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판문점=공동취재단/조미현/이미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