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없이 범인 수색' 형소법 조항 헌법불합치 결정서 지적
"이론상 가능하지만 전례 없어"…"개헌 때 함께 손질 취지"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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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형사소송법 조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면서 현행 헌법 조항을 손질해야 한다고 언급해 관심을 끈다.

일반 법률이 위헌인지 가리는 헌재가 최상위법인 헌법 조항의 개정 필요성을 결정문에 언급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법조인들은 사실상 첫 사례로 보고 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이날 서울고법이 형소법 216조가 헌법상 영장주의에 위배되는지 판단해달라며 낸 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영장주의'를 규정한 헌법 16조를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이날 "영장을 발부받기 어려운 긴급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도 영장 없이 피의자 수색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헌법상 영장주의 예외 요건을 벗어난다"며 형소법 216조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검사나 경찰이 범인을 체포하거나 구속하는 경우 영장 없이 타인의 주거지나 건물을 압수수색할 수 있도록 한 법률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영장 없이 압수수색을 할 수 있는 예외적 요건을 따로 두지 않고 무조건 체포·구속할 때는 압수수색을 허용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취지다.

헌재의 판단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형소법 216조가 헌법에 어긋나게 된 이유는 영장주의를 규정한 헌법 16조가 잘못 규정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헌법 조항을 먼저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헌법 16조는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는 검사의 신청에 따라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영장 없이 압수수색할 수 있는 예외 요건은 따로 규정이 없다.

이에 헌재는 "근본적으로 헌법 16조가 영장주의를 규정하면서 예외를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현행범 체포, 긴급체포 등 영장주의의 예외를 명시하는 것으로 헌법 조항이 개정되고, 그에 따라 심판 대상 조항이 개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례를 매우 이례적으로 받아들인다.

헌재가 최상위법인 헌법의 개정 여부를 결정문에 언급할 수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론상으로는 헌법 조항도 핵심 조항과 비(非)핵심 조항으로 나눌 수 있고, 이에 따라 비핵심 조항의 경우에는 핵심 조항에 위반되는지를 헌재가 판단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이론을 주장하는 헌법학자는 극히 드물고, 실무상으로도 헌재는 헌법 조항에 대해 판단을 할 수 없다고 보는 견해가 대부분이다.

헌재가 과거 유신헌법의 위헌 여부를 판단한 적은 있지만, 이는 현행헌법에 대한 판단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헌법연구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번 헌재의 결정은 구속력이 없는 의견의 개진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개헌 과정에서 헌법 16조 규정도 함께 개정되기를 바란다는 취지 정도로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