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핵동결, 청신호"…백악관 "北 말 곧이곧대로 안 믿어"
남북미, 비핵화 논의 초입서 '신경전'…'톱다운' 합의해도 이행과정 난항 예고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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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을 골자로 한 북한의 '선제 조치' 발표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 백악관 사이에 미묘한 온도 차가 감지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선(先) 조치를 '핵 동결'로 규정하면서 향후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밝은 전망을 내놨지만, 미국 백악관은 '북한의 말만을 믿을 수 없다'며 '구체적인 조치'가 취해질 때까지 대북 압박은 계속된다는 경계심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23일 주재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북한의 핵 동결 조치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중대한 결정"이라며 "남북·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청신호"라고 평가했다.

비슷한 시각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완전하고 전면적인 비핵화를 향한 구체적 조치가 취해지는 것을 볼 때까지 최대 압박작전을 계속할 것"이라며 구체적 조치 이전 대북 제재 해제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샌더스 대변인은 "우리는 북한 사람들의 말을 단순히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며 "우리는 이 과정에서 순진하지 않다"고도 했다.

북한의 선제 조치 발표 직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결론을 도출하기까지는 아직 먼 길이 남아있다"고 한 데 대해 언론을 상대로 한 명확한 부연 설명이었다.

한미 정상이 북한의 발표에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지만, 이를 문 대통령은 비핵화라는 미래 목표 달성과 관련해 청신호로 해석한 반면 백악관은 '말만 하지 말고 구체적 조처를 하라'고 엄포를 놓은 셈이다.

특히 백악관이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조치 없이는 대북 제재 해제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것은 '북한이 비핵화 논의의 입구로 들어설 선제 조치를 했으니 미국도 상응한 조치를 하지 않겠느냐'는 일각의 관측을 일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문 대통령과 백악관 사이에 북한의 발표를 바라보는 시선이 미세하나마 엇갈리는 것은 남북·북미 등 일련의 정상회담을 거쳐 비핵화에 대한 큰 틀의 합의가 이뤄져도 이행 과정에서 북미는 물론 한미 간에도 일정 부분 충돌 지점이 발생할 여지를 시사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문 대통령도 "북한이 핵 동결부터 출발해 완전한 핵 폐기 길로 간다면 밝은 미래가 보장될 수 있다"고 해 '출구'인 핵 폐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출구로 가는 시작점인 핵 동결의 첫 단추가 북한의 이번 발표라는 점을 부각한 셈이다.

이를 두고 한반도 비핵화 문제의 당사국인 남북미가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신경전'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북미 간 중재역을 자처한 문 대통령으로서는 북미 사이의 교집합을 최대한 넓히기 위해 정상회담 초입부터 분위기 조성이 우선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북한은 기존 핵 처리라는 핵심 사안에 대한 언급 없이 '미끼'를 던져 미국의 반응을 탐색하고, 미국 역시 이에 대한 즉각적인 견제구를 던지면서 '비핵화 없이는 보상도 없다'는 기존 메시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으로 볼 때 지금처럼 정상 간 큰 틀의 합의가 우선하는 '톱다운' 방식의 비핵화 논의가 이뤄지더라도 결국 주고받기식의 단계별 조치가 개입될 수밖에 없는 이행 조치 과정에서 적지 않은 난항을 겪을 소지가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문 대통령이 19일 언론사 사장단 간담회에서 "'디테일의 악마'를 넘어서는 게 가장 과제일 것 같다"고 말한 것도 이런 시각과 궤를 같이한다.

남북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문 대통령으로서는 이런 신경전 사이에서 북미를 조율해 이들의 비핵화 논의를 순항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