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예산 출장만 지난 1년간 87건…"피감기관·기업 출장은 파악도 안 돼"
"일등석 항공권·호텔 등 기관 돈으로"…과거 마사회·선주협회 출장 스캔들 비화
"김영란법 공론화 후 급감…기업 출장 사라지고 피감기관 출장은 20% 수준으로"
"김기식 출장, 일반적 관행으로 봐야" vs "1인 출장-인턴 대동 특이한 사례"
김 원장 과거 피감기관 출장행태 혹독한 질타가 부메랑으로…"이중적" 비판 초래


김기식 신임 금융감독원장의 19대 국회의원 시절 '외유성 해외출장 의혹'이 정치권의 뇌관으로 떠오르면서 이제껏 관행으로 여겨졌던 의원들의 해외출장 실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연합뉴스가 10일 만난 다수의 국회 관계자들은 "실제로 과거에 의원들이 피감기관의 돈으로 해외출장을 다녔고, 이른바 '접대성'으로 볼 수 있는 출장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럼에도 2015년 3월 27일 공포돼 2016년 9월 28일부터 본격 시행된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법) 도입 이후에는 이런 사례가 흔치 않은 데다 특히 특정 정당의 의원 혼자서 출장을 갔다는 점, 또 인턴 보좌진이 동행했다는 점 등에서 김 원장의 출장은 특수 사례로 봐야 한다는 평가가 국회 안팎에서 나온다.

단순히 '관행'이라며 그냥 넘기기에는 무리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다.
의원 해외출장, 공공연했던 부적절 관행… "김기식 사례 이례적"
◇ 해외출장 유형 네 가지…"국회 지원 안 받으면 공개의무 없어"
의원들의 해외출장은 누가 비용을 부담하느냐에 따라 ▲국회 예산 보조 출장 ▲해외 기관 초청 출장 ▲정부산하기관·피감기관 예산 출장 ▲민간기업 예산 지원 출장 등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국회에서 예산이 지원되는 출장은 국회 상임위 활동이나 의원연맹 등 공식 의원단체 활동의 하나로 이뤄지는 출장을 말한다.

이 경우 국회 홈페이지에 출장지에서의 활동 내용이나 결과 등이 담긴 보고서를 게시토록 하고 있는데 지난해 4월 10일부터 이날 현재까지 1년간 국회 홈페이지에 87번의 보고서가 올라온 것만 봐도 의원들의 외국 출장이 얼마나 빈번한지 알 수 있다.

해외 기관의 공식 초청을 받아 이뤄지는 출장도 있다.

일례로 폴란드 의회가 지난해 말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들을 현지로 초청한 바 있는데 이런 경우 예산은 초청기관이 대부분을 부담한다.

이 두 유형의 경우 상대적으로 투명하게 출장이 진행되는 데 반해 정부 산하단체나 피감기관, 민간기업 예산으로 이뤄지는 출장은 제대로 실태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런 출장의 경우 의원들이 공개할 의무도 없고, 또 공개하는 일도 많지 않아 언제든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김 의원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해외출장 역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한국거래소, 우리은행 등에서 비용을 댔다.

앞서 2013년에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여야 의원들이 피감기관인 한국마사회의 지원을 받아 5박 6일간 홍콩·마카오·싱가포르 출장을 다녀와 논란을 빚었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4월 말에는 국회의원 모임인 '바다와 경제포럼' 소속 의원들이 한국선주협회의 지원을 받아 2009년부터 5차례 해외 시찰을 다녀온 일이 드러나면서 질타의 대상이 됐다.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 민간기업의 지원 출장도 적지 않았다고 국회 관계자들은 전했다.

특히 피감기관이나 민간기업의 지원으로 출장을 갈 경우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만큼 업무에서 벗어난 외유성 일정이 끼어들거나 '황제급' 의전이 뒤따르기도 한다는 것이 이들의 증언이다.

한 의원실의 보좌관은 "기본적으로 일등석 항공권, 고급 호텔 숙박권 등이 보장되는 출장"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바로 이런 현실 때문에 국회의원의 해외출장이 피감기관의 활동을 직접 현장에서 보고 이해도를 넓히며 입법에 필요한 견문을 쌓는 기회가 된다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쉽게 '유착'의 수단으로 변질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의원 해외출장, 공공연했던 부적절 관행… "김기식 사례 이례적"
◇ '김영란법' 이후 줄어든 해외출장…"비판여론 의식"
그렇다면 여의도에는 지금도 이런 출장 관행이 만연할까.

이런 질문에 국회 관계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젓고 있다.

수년 전부터 급격히 문화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김영란법의 시행이다.

과거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의원실 등에서 근무한 한 보좌관은 "16~18대 때에는 산업시설 시찰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가는 등 사실상 외유가 많았다"며 "하지만 19대 국회 때부터 김영란법 논의가 활발해졌고, 의원들도 움츠러들기 시작했다"고 떠올렸다.

이 보좌관은 "특히 피감기관 지원 출장이 급격히 줄었다.

체감상 20대 국회에 들어와서는 18대 국회의 20% 수준만 남았다"며 "민간기업 지원 출장의 경우 거의 자취를 감췄다"고 설명했다.

다른 보좌관 역시 "과거에는 부처에서 돈이 많은 산하기관·공기업을 '끼워 넣어' 비용을 대도록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김영란법 후에는 대부분 국회 예산을 활용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선주협회 지원 출장 논란 등을 계기로 고조된 비판여론을 의원들이 더 민감하게 의식하게 됐다는 점도 이런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 상임위원장 역시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제는 피감기관 예산으로 출장 가는 일은 없어졌다.

국회 예산으로 가야 한다"며 "위원장으로서는 국회에서 출장 예산을 최대한 많이 따내는 것이 '민원 사업'이 됐다"며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의원 해외출장, 공공연했던 부적절 관행… "김기식 사례 이례적"
◇ "金 출장, 관행으로 봐야" vs "의원 1명이 인턴 동행한 출장은 이례적"
국회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처럼 김영란법 등으로 달라진 출장 분위기를 고려하면 이번에 논란이 된 김 원장의 2014년~2015년 세 차례의 출장은 매우 이례적인 사례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물론 일각에서는 "피감기관 지원 출장은 당시 관행에 따른 것"이라는 김 원장 측 해명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상당수의 관계자가 김 의원이 출장이 이뤄진 시기가 김영란법이 공론화된 2013년 이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관계자는 "물론 김영란법이 시행된 것은 2016년 9월이지만,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2015년 3월"이라며 "김영란법을 주도한 김 의원이 2015년 5월에 두 차례 출장을 간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보좌관은 "내가 국회 보좌관만 십수 년 차인데, 일반 기업의 후원으로 해외출장을 가는 사례를 본 적이 없다"며 김 의원의 우리은행 지원 출장을 '특이 사례'로 규정했다.

특정 정당 소속 의원이 혼자서 출장을 갔다는 점에도 의문부호가 따라붙는다.

한 상임위의 관계자는 "상임위원장이나 간사를 통해 출장 의뢰가 들어오더라도 보통 여야를 섞어서 복수의 정당 의원들이 함께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는 외유성 출장이 되지 않도록 서로 견제하는 모양새를 취해야 '뒷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간사가 혼자 나갔다는 점이 화근이 된 셈"이라며 "여기에 여성 인턴까지 동행하면서 공격의 빌미를 줬다"고 말했다.

김 원장을 옹호하는 반론도 있다.

한 보좌관은 통화에서 "국회 예산을 받지 않는 경우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혼자서 출장을 가는 일도 적지 않다"며 "정책 활동을 위해 보좌진을 동행하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야당이 지나친 정치공세를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보좌관은 "결과적으로 피감기관에 특혜를 주지도 않은 것 아니냐"라며 "이렇게까지 문제 삼을 일인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과거 김 원장 본인이 피감기관들의 민간기업 지원 해외출장을 호되게 질타했던 것 역시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모양새다.

김 원장은 정무위 소속 의원이던 2014년 국정감사 당시 한국정책금융공사 직원들이 해외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심사와 점검을 이유로 공무 해외출장을 다녀오면서 투자 기업한테 출장비를 지원받은 것을 두고 "매우 부적절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당시 김 원장은 국감 자료에서 "직원들은 관련 영수증이나 증빙자료를 남기지 않는 등 불투명한 출장을 했다"며 "실사 차원의 출장비용을 해당 기업에서 부담하는 것은 '로비'나 '접대'의 성격이 짙다"고 꼬집었다.
의원 해외출장, 공공연했던 부적절 관행… "김기식 사례 이례적"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