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설서 북핵 협상과 연계를 시사한 것은 현실적·논리적 타당성 결여
남한과 북한 혼동, 옆길 새기 등 트럼프 특유의 연설 습성 감안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북·미 핵 협상을 연계한 듯한 표현을 써서 큰 논란을 일으킨 연설 대목에 대해 '오컴의 면도날(불필요하거나 번잡한 가정과 가설을 배제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원칙)'을 사용하면 그 특유의 `옆길로 새기'와 `남·북한 혼동' 가능성이 유력하다.
트럼프가 한·미FTA와 연계한 것은 방위비 분담 협상일 듯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에서 "친구는 친구고" 친구(동맹) 사이에서도 계산은 정확히 해야 한다는 `거래 외교' 노선을 강조하고, 중후반부에서 한국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문제를 재거론한 것을 고려하면, 그가 한·미 FTA 개정 합의를 무언가에 연계시킬 요량이라면 현재 진행 중인 한·미 간 방위비 분담 협상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오하이오주에서 미국의 사회기반 시설에 대해 연설하던 중 한·미 간 FTA 개정 협상 합의를 높이 평가하고 자신의 치적으로 자찬했다.

바로 이어 뜬금없이 "나는 북한과 어떤 협상(a deal)이 이뤄질 때까지 그것을 보류해 둘지도 모른다"고 말해 한국 정부 뿐 아니라 백악관도 무슨 뜻인지 몰라 당황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후 라지 샤 백악관 부대변인이 해명에 나섰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협상도 포함해 모든 관련 사안들을 고려해 최종 합의문에 서명할 최적의 시일을 결정할 것"이라고 어색한 설명만 내놓았다.

한·미 FTA가 북·미 정상회담과 무슨 관계인지 설명하지 못한 것이다.

한국 정부가 미국 측에 트럼프 대통령의 진의를 물어본 데 대해서도 시원한 대답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5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에서 나오는 발언들이 모순이 많다"며 "정확히 이런 뜻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미국에도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백악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실언' 가능성을 공개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 국내외 언론 매체와 전문가들은 현실적 타당성과 논리적 일관성이 부족한 트럼프 대통령의 '연계'를 해석하느라 '오컴의 면도날'로 베어내야 할 무리한 가정과 가설을 동원했다.

"미국의 고위관리들은 사석에선 한국이 미·일·한 동맹의 약한 고리여서 북한과 합의를 너무 서두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면서 한국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원칙으로부터 이탈하는 합의를 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거나 경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대북 지렛대가 부족한 트럼프 대통령이 대신 한국을 겨냥해" 한국이 "확고한 노선을 유지하도록 문재인 대통령을 자극하기 위한 시도일 수 있다"고 풀이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 신문은 그러나 FTA 협상 타결 직후인 지난달 27일엔 "미국은 (까다로운 대북 핵 협상을 앞두고) 동맹으로서 한국이 필요한 때 FTA 협상의 교착 상태를 계속 끌고 갈 수 없는 형편"이라고 타결의 정치적 의미를 설명했었다.

FTA 합의의 보류가 아닌 타결이 한·미 공조를 위해 필요했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어떤 협상이 이뤄질 때까지" FTA에 서명하지 않겠다는 것은 사실은 북한에 대해선 지렛대가 될 수 없고, 한국과 관계에서도 도리어 한·미 간 불신과 불협화음 소지를 남겨 놓는 요인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한국의 협력이 필요한 미국 입장에선 '자해' 행위인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FTA 타결에 대해 "한반도 평화 정착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 간 긴밀한 협력이 꼭 필요한 상황에서 갈등 요인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아주 잘한 일"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계 시사 발언을 두고 '한국에 대한 압박이나 경고용'이라는 일각의 해석을 우회 반박한 것이기도 하다.

남·북 정상회담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트는 것만으로 무력화할 수 있다.

그 이전에, 한·미 양국 정부 간 협의 과정에서도 미국의 대한 지렛대는 FTA 말고도 부족할 게 없다.

근본적으로,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의 비핵화 원칙에서 크게 어긋나는 합의를 남·북 정상회담에서 추구하는 게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정상 사이에 교환된 특사를 통해 강조한 점도 북·미관계 진전, 즉 비핵화 문제에서 진전 없이는 남·북 관계 진전에 한계가 있으니 북한이 미국과 핵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더구나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해 한·미 FTA 개정이라는 어려운 일을 자신이 해냈다고 자랑했다.

그 서명과 이행을 성사 여부가 불투명한 북한과 합의와 연계할 일이 아니다.

대신, 단순하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무의미한 발언, 관련성 없는 사안들로 옆길 새기, 혼동 등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연설 습성을 적용해보자.
그는 "이번 주 막, 우리는 한국과 훌륭한(wonderful) 합의를 이뤘다"며 FTA를 고쳐서 "미국에 쏟아져 들어오는" 한국의 철강, 자동차, 트럭 등 교역을 위한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었다고 자찬한 뒤 "그런데 나는 북한과 어떤 협상이 이뤄질 때까지 그것을 보류해 둘지도 모른다"고 말하곤 "왜 인지 아느냐"고 몇 차례 반복하면서 후속 말을 찾다가 "왜냐하면 그것은 매우 강력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대우받도록 확실히 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는 북한과 매우 잘 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최근 북한의 대미 비난이 잦아든 점을 지적하고 북·미 정상회담이 잘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앞으로 매우 흥미로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고는 다시 "한국은 훌륭한 태도를 보여줘 왔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마 그것(FTA)을 한동안 보류해 둘 것이다.

이 모든 게 어떻게 될지 두고 보자"고 덧붙였다.

`북한과 어떤 협상'은 사실은 한국과 방위비 분담 협상을 염두에 둔 것인데 실언일 가능성이 크다.

FTA 서명 여부는 대북 핵협상보다는 대한 방위비 분담 협상에서 강력한 카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공평한 대우'는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과 동맹간 방위비 분담 관계에서 사용하는 단골 표현인 점이 이 해석을 뒷받침한다.

미국이 남·북한을 공평하게 대우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어떤 협상'을 '북한과 어떤 협상'으로 잘못 말한 김에 이어서 북·미 정상회담으로 샜다가 다시 한·미 FTA로 돌아갔다.

그리곤 연설 중후반부에 가서, 미국이 그동안 외국의 건설을 위해 수조 달러씩 쓰느라 정작 미국의 사회기반 시설엔 투자를 하지 못했다며 "한국(Korea)을 보라. 거기에 국경선(border.휴전선)이 있다.

군인들(주한미군)의 장벽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비용을 별로 받지 못하고 있다.

보라, 아무도 그 벽을 넘어오지 못하고 있다"고 방위비 분담 문제를 거론했다.

이어 "좀 잘못된 것 아니냐"며 다시 "보라, 북한과 한국을. (주한미군) 3만2천 명의 병력, 최고의 장비, 그곳(휴전선)에 깔린 철조망, 그 모든 것을 우리가 보호해주고 있다.

그래서 아무도 못 넘어오는데 우리나라는, 우리는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뇌리에서 한·미 FTA, 방위비 분담, 북핵이 섞여서 돌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하이오주 연설에서 '시리아에서 빠른 철수' 방침을 밝혔다가 5일 미 국방부는 이를 부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