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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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블랙리스트) 작성과 이에 따른 실행을 지시·공모한 혐의에 대해 유죄라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6일 박 전 대통령의 선고 공판에서 "비서실장 등 청와대 참모진과 공모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강요 혐의 모두 유죄로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 등 참모진, 문체부 공무원 등과 공모해 좌파 성향의 문화·예술인과 단체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은 특정 개인이나 사건의 지원을 배제하는 데 어떤 보고도 받지 않았고 지시한 적도 없다며 혐의를 부인해 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청와대 직원의 증언과 수석비서관회의 자료 등을 보면 좌편향 예술계 인사들의 지원을 배제했다는 주요 보고서 등을 보고받은 사실과, 이런 보고를 받고도 중단하라고 하지 않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에게 보고된 (지원배제) 대상 중에는 정부와 다른 이념성향을 가졌거나 정부 비판을 지지하는 개인·단체가 다수 포함됐다"며 "이념적 성향이나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지원을 배제하는 것은 평등 원칙 등 헌법에 반하고 위법한 조치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직위를 고려하면 구체적인 개별 행위마다 인식하지 않았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공범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재판부는 문예기금 심의 등에 대한 부당개입 등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의 증거만으로는 산하기관 임직원이 의무 없는 일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노태강 전 문체부 국장과 2급 공무원 3명의 사직을 강요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노 전 국장에게 징계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있다고 해도 의사에 반해 면직당하지 않게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의 사직을 강요한 것은 직권을 위법·부당하게 행사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아울러 3명의 2급 공무원의 사직 강요에 대해서도 "(박 전 대통령이)사표를 받으라 지시하거나 승인해 공모한 것이 넉넉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진행된 다른 국정농단 재판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결론이기도 하다.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 등의 재판에서 1심은 박 전 대통령의 공모관계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항소심은 인정한 바 있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문재인 정부 들어 청와대 캐비닛에서 발견된 대수비(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실수비(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자료 등을 근거로 지원배제 방안 등이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행위가 단순히 '좌파 지원 축소 및 우파 지원 확대'가 바람직한 정책임을 선언한 것에 그치는 것이라 보기 어렵다며 "국정 최고 책임자인 자신의 직권을 남용했고, 동시에 김기춘 등의 직권남용 행위에 공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